입력 : 2014.03.26 10:00

This Man | 버츄얼빌더스 최진원 대표

취미랄 게 딱히 없다고 했다. “술 마시는 정도?(웃음)” 골프도 안 하고 유학시절엔 테니스를 곧잘 했지만 지금은 전혀. 피트니스센터도 아침에 생각날 때 잠시 들르는 게 전부라고 했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 그가 심신을 기울이는 곳은 단 한 가지, 일이다. 25년여 동안 일과 놀이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살아온 이 남자는 말한다. “몰입이 곧 습관이자 취미”라고.


최진원(53) 대표의 일터이자 놀이터인 버츄얼빌더스는 국내에선 드물게 공간 비즈니스와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다. 최근에는 순수 국내 기술과 아이디어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3D 설계(BIM) 전문 소프트웨어 아비모(Abimo)를 출시하며 화제가 됐다.

버츄얼빌더스 최진원 대표
버츄얼빌더스의 시작은 조금 이채롭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8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96년 이후 아주대와 연세대에서 건축학 교수로 재직한 최 대표가 2003년 제자 한 명과 학내 공학원에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 게 그 시초다. 말하자면 연구 차원에서 시작해 사업으로까지 이어진 케이스. 단 두 명뿐이었던 회사는 11년 만에 100명의 직원을 둔 중견벤처로 성장했다. 최 대표가 교수생활을 그만두고 회사에만 올인한 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재작년까지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였다면 작년부터는 제품이 팔려나가는 단계다. 올해부터 가속도가 붙게 될 거다. 올 한 해 목표 매출은 200억. ‘투자의 시기’를 거쳐 드디어 ‘수확의 시기’로 진입하게 됐다.” 국내외에서 투자를 원하는 파트너 기업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 최 대표. 자리에 앉자마자 일 이야기만 줄곧 쏟아내는 그의 얼굴엔 설레는 빛이 역력하다.


‘일 생각’과 함께 하는 걷기

8년간의 유학생활과 15년간의 교수생활. 일반적인 기업 CEO들과 최 대표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구자 출신 CEO답게 언제 어디에서나 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일 외엔 따로 관심을 두는 일이 없다고 강조하는 최 대표는 CEO의 필수과목이라 할 수 있는 골프도 치지 못한다고. 특별히 취미라 할 만한 운동도 없다. 여러 곳의 등산모임에 가입은 돼 있지만 열성회원은 못 된다. 그저 어쩌다 생각날 때 이 모임 저 모임 들러 사람들과 산을 타는 정도다. 그런 최 대표에게 어렵사리 취미 하나를 골라내자면, 그건 걷기다.

“집이 구파발이다. 걸어서 20분이면 북한산 둘레길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그 길을 나선다. 주로 혼자 가고 열 번 중 두 번 정도는 중3 늦둥이 아들과 함께 간다. 한바퀴 도는 데 2~3시간 정도 걸린다.” 그의 걷기는 운동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걸으면서는 주로 사업 생각을 많이 한다.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 바로 메모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고서(웃음).”

회사 근처 와우산길이나 창전동, 삼청동 같은 고즈넉한 도시길을 걷는 것도 좋아한다는 최 대표. CEO라는 직업상 여느 월급쟁이처럼 틀에 박힌 패턴으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는 이따금 평일 출근 전 아침이나 이른 퇴근을 한 오후 3시경 걷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물론, 그 걷기에는 언제나 ‘일 생각’이 동반한다.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계속해서 그 생각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일과 무관한 일을 할 때도 많지만 그 역시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가도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책을 덮고 구상에 몰두한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벌써 25년이다.”

25년 이상 일에 몰입한 상태. 몰입이 곧 습관이 된 상태. 일과 놀이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 이 같은 상태 자체가 최 대표를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에 빠져 사는 게 스트레스가 되진 않는다. 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남들보다 높은 편인 것 같다(웃음). 간혹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걷고, 사우나하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시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다.”


정년은 없다

최 대표의 가장 큰 낙은 한 달에 한 번 고향 부산에 내려가는 것. “일흔여덟 되신 어머니가 혼자 지내신다. 어릴 적 뛰놀던 광안리 일대를 거닐며 바닷바람을 쐬고, 어머니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즐겁다.” 그런 그의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귀향. “내 오랜 꿈 중 하나는 부산 사무실을 내는 것이다. 물론 회사가 더 안정된 후의 얘기가 될 테지만. 그때는 북한산 둘레길이 아닌 부산 갈매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CEO에게 정년은 없다는 사실. 자신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일에 몰입한 상태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 물론 그 모습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CEO로서의 내 권한이 크지만, 회사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여러 사람과 권한을 나눌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김삿갓처럼 살고 싶다. 어머니와 여행도 다니면서….”
그렇다고 머릿속에서 일을 지우느냐? 그런 일은 없다. 다만 최 대표는 다른 스케일의 연구와 사업을 이어갈 것이다. “기업이며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으로 그는 확신한다. 누구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최 대표는 말한다. “앞으로 10년. 10년 내에 내가 원하는 이 모든 걸 다 이루겠다.”


최진원(53) 대표는 부산대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 등으로 일했고, 한국인포디자인학회 이사,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축위원, 서울시 DMC 건축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