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발총' 없어도 김수현은 김수현

"한물갔다"는 험한 말까지 나왔었다. 대가(大家)의 부진이 드라마 내용보다 더 자주 사람들 입에 올랐다. 이번 주말 종영하는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얘기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김수현(71) 작가의 목소리는 그러나 경쾌했다. "끝냈으니 시원해요. 섭섭하진 않고."

①어수선한 출발, 초반 동력 잃었다

드라마는 막판 뒷심으로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 주를 맞았다. 썼다 하면 대박 나는 '김수현 드라마'답지 않게 끝까지 다른 드라마와 각축을 벌였다. 그는 "시작부터 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대본 리딩까지 마쳤던 한가인이 "일정이 안 맞는다"며 출연을 포기했고, 드라마를 함께 준비한 정을영 PD는 촬영 시작도 못하고 하차했다. 결국 첫방이 2주 연기됐다. 작가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등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집필 중에도 꼭 하던 운동을 이번엔 빼먹었어요.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나봐요. 그래서 탈이 났나 봅니다."

②이혼이 불편해? 그래도 엄연한 현실

드라마는 여러 번 이혼을 다룬다. 느긋하게 시청하기 힘든 주제가 시청률을 떨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지아가 맡은 여주인공은 아이가 있어도 남편이 변하면 칼같이 갈라선다. "이지아가 자아(自我)가 너무 세 꼴 보기 싫다고 하는 모양인 데, 타협이 안 되는 사람도 있어요. 겉으론 타협하고 평생 속으로 이 갈며 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그래도 속앓이는 있었다. "드라마가 좀 불편함을 느끼게 한 모양이죠? 더 묽게 썼어야 했나 싶기도 해요. 다음 작품은 편안한 거 해보려고요."

김수현표 '따발총 대사'도 버렸다. 막장 드라마의 난투극 대신 결혼과 이혼, 가족에 대한 현실적인 대화를 담기 위해 좀 더 차분해지기로 했다. "연기자들에겐 '김수현 작품은 정신없이 빨라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다 잊어버리라고 했어요. 남녀 간 격정적인 복수를 다룬 것도 아닌데 탁구공 치고 받듯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③막판 약진… 버리는 캐릭터가 없다

초반의 부진을 딛고 드라마는 중반 이후부터 상승 흐름을 탔다. 그가 발탁한 철없는 계모 손여은과 간 큰 가사도우미 허진 등 신스틸러(scene stealer·주연보다 강렬한 조연)들이 큰 몫을 해줬다. 모두 결함은 있어도 밉지 않은 캐릭터다. "드라마에 흉악한 인물을 넣지 않는게 제 철칙이에요. 이 드라마에서 김용림씨가 가장 표독스럽지만 음모를 꾸미지도 않고, 얼마든지 현실적인 사람이죠. 인간성을 내버리진 않아요."

TV 드라마를 쓴 지 42년이 흘렀다. 칠순을 넘긴 그는 "이젠 밤 11시 넘어 끝나는 드라마 보기도 힘에 부친다"라고 했다. 그래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 쓴다. 건강 생각에 10년쯤 전 니코틴 없는 쑥담배로 바꿨다. "이 일 끝나는 날까지 숭한(흉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망가지지는 말아야지." 주문(呪文)을 걸듯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