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오지마을과의 약속, 19년 만에 지킨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등정(登頂)에 나섰다가 고인이 된 대원 6명, 그리고 셰르파 4명이 만년설 저 산에서 이 순간을 보고 있을 겁니다."

지난 11일 네팔의 쿰부히말에 있는 8463m 고봉(高峰) 마칼루(Makalu) 중턱. 엄홍길(54) 대장은 '엄홍길 휴먼재단(이사장 이재후)'이 짓는 휴먼스쿨 기공식에서 산을 향해 기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칼루는 세계 다섯째 높은 산으로, 에베레스트 동쪽 22km에 있다. 1995년 그는 깎아지른 이 봉우리를 3차 도전 끝에 올랐다. 마칼루는 산악인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가 '검은 귀신'으로 불린다. 엄 대장도 처절한 사투를 벌였고, 동시에 도전에 나섰던 다른 팀의 오스트리아인은 실족사했다.

엄 대장은 등정 성공 후 마칼루 주민들에게 "다시 찾아와 보답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19년 만에 지키게 됐다. 지프를 타고 5시간, 걸어서 7시간 등 1박 2일에 걸쳐 찾아간 마을이다. 그가 두손 모아 "나마스테"라고 인사하자, 마중 나온 학생과 주민 300명도 "나마스테" 하며 답했다. 엄 대장은 "여러분에게 오늘부터 희망과 도전의 길이 열린다"며 "이곳은 더 이상 오지(奧地)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창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함성이 히말라야 산자락에 메아리쳤다.

엄 대장에게 마칼루는 특별하다. 80일이 넘는 도전 기간, 가슴까지 빠지는 가파른 눈길을 30㎏ 넘는 짐을 메고 18일간 베이스캠프(해발 5800m)까지 가는 길부터가 지옥의 행군이었다. 이후 정상 공격을 위해 해발 7900m 지점에 친 텐트에 비상식량과 장비를 보관하고 두 차례 최종 등정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돌아와보니 눈보라에 텐트까지 날아간 절망적 순간을 맞기도 했다. 다행히 오스트리아 대원들이 친 텐트를 겨우 찾아 언 몸을 녹인 뒤 3차 시도에 성공한 이야기를 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엄 대장은 "정말 지칠 대로 지치고 몸무게도 14㎏ 빠졌지만 죽음 문턱까지 갔던 마칼루 경험을 통해 비로소 14좌 완등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엄 대장은 이날 기공식 행사에서 밍마(35)라는 셰르파를 소개했다. 2011년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네팔의 영웅으로, 엄 대장과는 15년 동지다. 밍마는 엄 대장이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와 "내 고향 마칼루야말로 오지 중 오지여서 학교가 절실하다"고 호소해 건립 약속을 받아냈다. 마칼루 학교는 한국과 네팔 두 산악 영웅의 15년 우정이 만든 결실이기도 하다. 이 일대에는 총 2000명이 살고, 내년 개교하면 200명이 등교하게 된다. 하나금융그룹이 비용 3억원을 대기로 했다.

엄 대장은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오르고도 살아남은 보답으로 16개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2008년 엄홍길 휴먼재단을 출범시켜 2010년 5월 에베레스트 길목인 해발 4000m 팡보체 마을에 첫 학교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6개 학교를 완공했고, 이날 10번째 학교 기공식을 가졌다. 첫 학교는 에베레스트 등정 때 함께 나섰다가 사망한 셰르파 도루지의 고향에 세웠다. 엄홍길은 아시아인으론 처음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데 이어 2007년 해발 8400m 로체샤르에 오르면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정의 신화를 썼다. 엄홍길 휴먼재단 전화 02-736-8850 후원계좌 1006-880-008848(우리은행), 101-884888-48805(하나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