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權 변호사'는 틀린 말… 변호사 자체가 人權"

"'인권 변호사'란 말은 틀린 말이에요. 변호사엔 이미 '인권'이란 말이 들어 있어요. '헤엄 잘 치는 수영선수' 같은 동어 반복이죠."

김대중 정부 때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韓勝憲·80·사진) 변호사는 유신 때인 1975년과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두 차례 22개월간 감옥에 있었다. 반공법 위반, 내란 음모 혐의였다. 한 변호사는 27일 "내가 반공법 전문 변호사인데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으니 수상안전요원이 물에 빠져 죽은 것과 같은 일"이라며 웃었다.

한 변호사는 최근 '법조 55년 기념선집'(전4권)을 완간했다. 지난해 먼저 3권을 냈고 올해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범우)를 출간했다. 그는 1957년 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70~80년대에 고문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분노가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변호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감옥은 국가가 의식주를 해결해줘요. 그래서 내가 지식재산권 법률 공부를 깊이 할 수 있었어요."

고난을 웃어넘기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한승헌표(票) 유머'는 유명하다. "한국 교도소는 네 종류가 있어요. 나는 민간 교도소에 처음 수감됐어요. 두 번째는 군 교도소였는데 이후 소년 교도소로 옮겼어요. 여자 교도소만 못 갔어요."

한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꼽았다. 당시 경북대 학생회장 출신 여정남을 변론했는데 그는 이듬해 4월 상고심이 기각되고 결국 사형이 집행됐다. 한 변호사는 한 달 전 구속돼 최종심 변론을 하지 못했다. 그는 "여군의 사형이 확정되던 날 나 또한 재판받으러 법원에 갔다가 가족들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여정남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한 변호사는 전북 진안의 산간 벽촌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전북대를 졸업했다. 당초 교사나 아나운서·기자가 되려고 했지만 시험에 떨어지거나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법조계 입문은 '제4지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초지(初志)일관'이란 말을 안 해요. 법조 인생은 '사지(四志)'였으니까요." 하지만 변호사가 된 건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며칠 전 한 대학 로스쿨 강연에서 손자뻘인 학생들에게 말했다. "남을 위하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해요. 남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권능과 기예를 가진 직업이 법조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