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수심공헌지구(修心供獻之具) 호림박물관
입력 : 2014.04.03 03:47
석장을 들고 민머리나 두건을 쓴 보살이 지장보살이라는 설명에 바라보는 지장도의 색채가 선명하다. 불화에 담아가는 시간의 경계를 색으로 알아갈 수 있음이다. 고려 시대의 불화와는 다르게 조선 시대의 불화는 그 색채가 더 화려해진다.
억불정책이 시행되던 조선 시대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을 색으로 표현하여 그 신앙을 마음의 길로 향했던가 싶을 만큼 불화가 지니고 있는 색깔이 선명하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강하게 애틋해지는 금지된 것을 향하는 인간의 본성이 종교에서도 표현되는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던져본다.
호림박물관 소장의 조선 시대 불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를 바라보면서 느낀 마음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두 점의 불화에서 16세기의 고려 불화는 국내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호림박물관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무중력에 떠 있는 달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신사동의 호림박물관 분원이다. 일반적인 전시장의 조명과는 다르게 어슴푸레해서 더욱 빛나는 도자기의 형태이다. 서너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어느 여름날 바닷가의 어둠을 닮아있는 실내의 조명은 백자를 위하여 달빛 같은 빛을 내리고 있었다.
도자기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더 빛나게 하는 조명으로 실내의 공기는 백자가 지니고 있는 어떠한 품격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하여 한 켠으로 비켜서 있었다. 어느 것으로도 균형을 깨트리지 않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는 실내의 구도에서 빛을 죽인 조명들과 공기들이 가볍게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담고 있는 백자의 형태에서 찾아가는 생명의 근원이다. 사물을 바라보면서 원형의 본질을 생각하고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시간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두려움이 따라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처럼 보이는 형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얼마나 정확한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부호 하나가 마음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백자가 지니고 있는 사물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대상으로 우리가 살아가기 이전의 세상을 바라본다. 리얼함을 정점으로 하여 자신의 몸체를 빛으로 지니고 있는 백자의 시간 속에 시선을 멈춘다. 세밀하게 바라보아야 흐름이 보이는 문양에서 발견한 한 마리의 물고기는 도공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세상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상황으로 상상하는 가상의 세계가 도자기 속의 영혼을 지닌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분청사기상감파어문병 도자기의 문양에서 그 명확함을 확인한다.
도공의 철학으로 이루어가는 도자기의 형태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현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손색이 없는 도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삶의 시간으로 머물러 있다가 그 시간을 뛰어넘는 도자기의 형태는 현대의 추상화를 닮아 있었다.
현대적인 작품으로 착각될 만큼의 형태와 문양을 바라보면서 예술가로서의 도공이 지니고 있던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었을까 하는 놀라움이 그 실내를 비추고 있는 흐릿한 빛 속에 안개처럼 차오른다. 피해가지 못하는 자연의 성질과 현실 사이의 질서를 생의 본질로서 담아 탐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자기의 형태에 녹아있는 도공이 지니고 있는 순리를 따라가는 철학과 예술의 세계에는 시간의 흐름이 구별되지 않는다. 시대를 능가하는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형상화하려 한 오래전 예술가들의 영혼을 도자로 마주하던 날이다.
전통과 삶에 반영되는 미의식의 세계를 지니고 있던 영혼의 흔적을 만나던 날에 그 영혼에 의미를 이어주던 젊은 학예사의 설명으로 도자의 가치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규격과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이루어가던 영혼과의 교감으로 그 가치가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손끝의 노력과 심미안이 철학적인 교감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남겨진 흔적이었다. 단순한 복제와 재현이 아닌 흙의 성질을 자신의 분신처럼 이해함으로 하여 이루어진 형태의 완성이다.
가상의 이미지가 아닌 그 시대가 지니고 있는 삶의 모습으로 그 시간을 살다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존재의 의미를 도자기의 형태로 만나던 날이다. 세련된 문양의 형태와 달빛처럼 빛나던 색으로 이루어진 흔적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