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었는가. 귀에서도 꽃이 핀다. 시간의 모래 속에서 선인장이 살아나는 것처럼 오래된 노래가 새것처럼 피어난다.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 그렇게 세월이 들뜬 눈앞을 방금 스쳐 갔다. 시성 두보에서 청춘(靑春) 두 글자를 찾는다. 푸르른 계절이란 구요, 봄빛이 아름답다는 문장(春光明媚)이다. 중국도, 일본도 젊음(youth)을 청춘이라고 부르고, 청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년 말고 근사한 계절을 갖다 붙일 길은 없는 건가.
하야신스는 이름만 보고 들떠서 산 꽃이다. 작년 이맘때다. 엘리어트의 시를 보증수표로 여기고 이 꽃을 지난 봄날에 키워 보았다. 꽃은 손님처럼 왔지만, 주인의 무딘 손과 게으른 한대 속에 한번 피고, 말라버렸다.
불사조는 그림자 같은 생명의 본질을 지녀야 화려한 불꽃을 널름거리듯 상공을 차고 오를 날갯짓을 태풍처럼 치고 오를 것이다. 대개 꽃은 보고 감탄하는 것은 툭하면 감성으로야 잘하지만, 꽃을 피우는 그 본질적 생명을 나는 실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잘 해주지 못하기에 지켜주는 것은 힘든 일이다.
스스로 살아야 살 수 있는 게 식물일 것이다. 풀잎 문화가 깊이 바뀌면 영국이 자랑하는 녹색 장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국은 변명거리를 찾자면 인공을 싫어한다는 정원 해석을 잘들 한다. 마음이 있으면 그게 손이 가든 안가든 높은 격조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여백은 묵의 공간이고, 녹음의 공간은 다채로운 빛이 있는 만큼 손을 그래도 타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5월은 자식과 제자의 손에 들린 무겁게 모은 동전꾸러미로 살 수 있는 꽃들이 반짝한다. 우연히도 다시 보게 된 제비꽃은 4월의 작지만 만화 같은 강렬한 색을 눈동자에 남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맑은 빛과 목덜미에 따듯한 햇살은 이 작은 꽃에서 빛 보라를 일으킨다.
작지만 뚜렷한 그 황홀한 기운을 눈 속을 향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보이는 그것은 파괴의 말발굽 같지만, 보이지 않는 이것은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빛이 담은 몇 乘의 이미지가 눈 속에서 낮에 빛나는 폭죽같이 터지는 아름다움을 그 자그마한 덩치로 뿜는다.
집안에 들여 놓은 화분에 담긴 작은 나무와 많이 수척하게 마른 기다란 선인장류와 헝클어진 잎새가 화분의 주둥이를 빙 둘러 넘쳐나는 이름 모를 식물이며 값싼 난도 빛과 그림자를 향해 나가고 싶어 하고 목마른 기운을 잔뜩 부린다. 긴가 민가 물을 생각해 주지 않으려 해도 나무들의 풀들의 꽃들의 흙배는 몹시 목이 마른 가 보다. 겨울은 이들에게 사막이요, 이제 봄은 신기루 속에 바라던 진짜 오아시스다.
청춘은 햇볕이 문간에 노랗게 따듯하게 비친 때다. 단 한 번 오고, 오래 있을 것처럼 단단히 붙들어 메여 있을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새 그림자 스러지듯 사라지는 탈 공간의 무실체적 실체다. 보여도 잡히지를 않고, 있고 싶어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한 때다. 인간은 문밖의 그림자 스치듯 왔다가 다시 한 번 그림자 스치듯 지나가면 인생이다.
작은 청춘들은 만화를 보고 잘도 웃고, 그보다 안면 근육이 딱딱한 한국 아빠들을 보고도 뭐 그리 웃긴지 까르륵 웃기도 잘한다. 청춘은 청춘이되 같은 청춘이 아닐 것이다. 청춘이 좋아도 문화의 강역은 벗어나기 어렵다. 받지 못한 유산은 쓸 수가 없는 법 아닌가.
문화는 돈 그것만은 아니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다. 배우지 못한 발음을 흉내 내기는 정말 어렵다, 심하면 불가능하다. 익히지 않은 방언은 갈수록 혀가 붙은 듯 익히기 어렵다. 미국에서 배우로 유명해진 영국 배우는 지금도 뉴욕의 r 발음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웃음도 꽃처럼 피어나려면 물려받거나, 오랜 습관으로 익혀야 한다. 그 많은 얼굴 근육은 그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수화의 도구인데 어째 한국 사람의 얼굴은 딱딱한 가면 같다. 하회탈은 한국 문명의 인간에게 자유를 얻게 하려는 마지막 얼굴 근육이 아닐까. 봄볕이 바게트 빵같은 내 뺨에 약간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