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관의 '마이 코리아'] 수묵화같은 한국 누비며… 주말마다 사진기 듭니다

칼린 파비안(61) 주한 루마니아 대사는 주말마다 사진기를 들고 서울 밖으로 나선다. 2012년 봄 한국에 와 2년간 수원, 인천, 부산 등 곳곳을 누볐다. 그는 "순천만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물과 땅의 조화, 지형, 물의 색, 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파비안 대사는 지질학 교수 출신이다. 외교관이 되기 전 대학에서 암석과 광물을 가르쳤다. "루마니아 정부는 공산 독재 정권 시절 지질·지형 전문가를 많이 기용했습니다. 하지만 1989년 공산주의가 무너지며 지질학자를 원하는 일터가 크게 줄었죠." 그는 외교관에 지원해 1995년 헝가리 대사관 일등 서기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헝가리 대사, 네덜란드 대사를 거쳐 한국에 왔다.

"부임 명령 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거의 몰랐어요. 그래서 호기심이 오히려 더 큽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자연에 관심이 많다. "한국 지형은 굉장히 신비로워요. 다른 나라는 산과 하늘, 땅과 바다의 경계가 뚜렷한 선을 이룹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계선들은 선명하지 않아요. 수묵화 같죠." 그는 유럽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특유의 불분명한 경계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죠. 미완성이라 해서 결코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니 긍정적이라 할 수 있죠." 그는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인천대교를 추천했다. "인천공항 방향으로 차를 몰고 달리다 보면 하늘과 바다가 닿는 면이 흐릿하게 보이는 때가 있어요. 경계선이 선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투명한 것도 아닌, 신비한 모습이 되죠."

그는 스스로 '중독자'라 부를 정도로 한국 영화 팬이다. "시간이 날 때면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서 한국 영화를 봅니다. DVD로도 한국 영화 컬렉션을 몇 장 구입했어요." 부임 확정 후 한국에 대해 공부할 때도 영화를 많이 이용했다. '미인도'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섬'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한다. "한국 영화사를 개인적으로 연구해 보고 있어요. 영화 산업이 시작된 시기는 영화의 종주국이라는 유럽·미국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반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감독들이 역사·문화·자연을 활용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술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탁월합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많은 루마니아 사람이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며 "특히 젊은이들이 K팝과 TV 드라마, 영화에 열광해 한국에 오거나 한글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그의 외아들도 한류 팬이라고 한다. "한류가 유럽을 휩쓸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60년대를 강타한 '비틀스', 70년대를 뒤흔든 롤링스톤스처럼 이 시대 유럽을 풍미하는 문화죠."

미하엘라 파비앙 대사 부인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아내가 한의학에 흥미가 있어서 다른 대사 부인들과 한방 병원을 견학한 적이 있어요. 딱히 아픈 곳이 없었는데도 한국의 전통 치료법이 궁금해 침도 맞아 봤다더군요." 파비안 대사는 적어도 2년 더 한국에서 근무한다. 그는 "한국의 국립공원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항상 가고 싶은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정보가 너무 적어요. 외국인 힘으로 국립공원까지 찾아가기엔 많이 부족하죠. 개선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