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 골프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스크린골프'의 발상지(發祥地)는 한국이다. 국내 중견기업 골프존이 2001년 개발한 '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screen golf simulator)'가 실내 스크린골프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바닥에 골프공을 놓고 골프채로 때리면, 센서가 공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눈앞의 스크린에 마치 실제 골프에서 공이 날아가는 것 같은 화면을 펼쳐낸다. 골프 종주국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 등 외신(外信)도 한국의 스크린골프를 '환상적인(fantastic) 문화'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국내 실내 스크린골프장이 현재 8000여개에 달하고, 여기서 창출된 일자리만 약 4만개로 추산된다. 골프존이 대표적인 '창조경제'의 표본 기업으로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골프존의 작년 매출은 3650억원. 지난 3년간 평균 30%씩 고성장을 거듭해온 골프존은 최근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창업자인 김영찬(金榮贊·68) 회장이 올 4월부터 자발적으로 1년간 신규 기기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 골프존 기기를 구매한 골프방 업주들이 '경쟁 골프방이 계속 늘어나 매출이 줄어든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골프존은 빵집과 같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스크린 골프기기를 판매만 할 뿐이지만, 김 회장은 스스로 '1년간 신규 판매 중단'이란 결단을 내렸다.
◇"스크린골프는 網, 골프장은 物流"
대전광역시 유성구 탑립동 골프존 본사에서 만난 김영찬 회장은 "앞으로 포화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국내 스크린골프 시장에서 골프존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김 회장은 "사업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했다. 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장비를 만들어 파는 회사지만, 그는 "우리 업(業)의 본질은 제조가 아닌 망(network) 사업"이라고 말했다.
전국 골프방에서 운영 중인 골프존 장비 2만5000여대는 모두 본사의 서버와 연결돼 있다. 덕분에 전국 어느 골프방에서 게임을 하든 이용자의 게임 기록과 데이터가 본사에 차곡차곡 쌓인다. 기기 판매 대금보다 1인당 2000원의 게임 이용료가 현재 골프존의 가장 큰 수익원이다. 김 회장은 "10년 넘게 누적된 고객 데이터와 전국에 촘촘하게 구축해놓은 망(網)은 대기업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골프존만의 경쟁력"이라며 "기기 제조만 했다면 대기업이 나중에 뛰어들어 금방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업의 본질, 개념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예컨대 "스크린골프는 망(網) 사업" "골프장은 물류(物流)사업"이라는 식이다. 골프존은 야외 골프장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김 회장은 "골프장은 기본적으로 물류(物流)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IT 기술을 접목해 어떻게 하면 사람과 골프 장비를 원활하게 이동시키고, 더 많은 정보를 주면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골프존이 2012년 인수한 전북 고창의 '골프존카운티 선운'은 캐디가 스코어카드 대신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경기 내용을 기록한다. 스윙 동작은 코스 중간 중간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해, 나중에 골프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신의 동작을 분석해 볼 수 있다. 게임이 끝나면 라커룸 입구의 무인기기에서 동반자들과의 단체사진이 담긴 스코어카드를 개인별로 출력해준다. 이런 운영 방식으로 최근 부도 위기에 몰리는 골프장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선운 골프장은 연간 40%대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K골프'로 해외 진출
김영찬 회장은 "국내 모든 골프산업에 IT를 결합해, 해외에 'K골프'란 이름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무기는 올 2월 출시한 'GDR(골프존 드라이빙 레인지)'이란 첨단 골프레슨 장비다. 기기 앞에서 골프공을 치면, 천장에 달린 초고속카메라 센서가 공의 초당 회전수, 속도, 탄도(彈道) 등을 정확히 분석해낸다. 컴퓨터의 안내에 따라 혼자서도 자세를 바로잡고, 레슨을 받을 수 있다. 그는 "해외에선 스크린골프라는 낯선 문화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IT 기술을 접목한 레슨은 큰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휴대전화 뒷번호는 1872(18홀을 72타에 치는 것)다. 평소 실력은 80대 초중반. 단지 골프가 좋아 54세의 나이에 '늦깎이 창업'을 했다는 그는 "72세가 됐을 때 72타를 치는 '에이지슈터(age shooter·나이와 같거나 그 이하 타수를 치는 사람)'가 되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