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며 사는 당신, 어제의 하늘을 기억하나요

'The Weather Yesterday(어제의 날씨).' 작품 제목을 보고 머릿속 시계추를 한 바퀴 돌려 어제 날씨를 기억해봤다. 불과 24시간 전인데 도통 어제 하늘빛이 생각나지 않는다. 건망증이 이렇게 심하단 말인가, 심란해졌을 때 진짜 작품 앞에 섰다. 얇은 LED 패널 수백 겹을 붙여 구름·해 같은 일기 예보 아이콘을 형상화한 설치물에 기상 정보 사이트가 연결돼 정확히 24시간 전 어제 서울의 기온이 표시됐다. 기온 9도, 조금 흐림.

"당신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려는 '기계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의 좋은 예로군요. 앞만 보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 작가가 또 한 번 허를 찔렀다. "우리는 이렇게 하루면 잊힐 일기예보를 검색하느라 실시간 정보에 매달려요. 창밖만 열어보면 알 수 있는 현재 기온도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죠. 기술 중독 아닐까요?"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영국의 3인조 작가 그룹 '트로이카'의 작품은 이렇듯 첨단 기술에 마취된 현대인의 삶을 툭툭 건드린다. 영국왕립예술대(RCA)에서 만난 코니 프리어(독일·38), 세바스찬 노엘(37·프랑스), 에바 루키(38·독일) 세 사람은 런던을 무대로 활동한다. 2008년 영국 히스로 공항에 설치된 작품 'Cloud(클라우드)'로 일약 세계무대에 알려졌다. 공항의 출발·도착 안내판을 응용해 수천 개의 플립 장치를 달아 만든 구름 모양 작품이었다. 만남과 떠남이 오가는 공항의 풍경을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이라는 은유로 표현해 '스페이스텔링('스페이스'와 '스토리텔링'의 합성어로 공간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성공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우리 작업은 익숙한 삶의 방식, 당연시하는 인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과 가치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죠." 전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스스로를 문화 해설자(cultural commentator)라 지칭했다.

전시장 3층에 올라가면 형형색색 밧줄이 분수대의 물줄기처럼 솟구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분수 형태는 물이 만들어낸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 관객들은 밧줄이라는 '현실'과 물줄기라는 '환상' 사이를 줄타기한다. 4층에 전시된 '아케이드'는 수십 개의 굴절 판을 이용해 빛을 아치형으로 연출하며 '빛은 곧게 뻗어나간다'는 상식을 뒤튼다. 'The Sum of All Possibilities(가능성의 집합)'는 공중에 달린 여러 조각의 패턴이 돌아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보이게 한 작품.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마치 전체를 아는 양 떠드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다.

트로이카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효율 사회를 부추기는 가속기"라 말했지만 인터뷰 내내 그들의 아이폰 역시 쉴 새 없이 울렸다. "우리는 기술에 반기를 들지는 않습니다. 기술과 예술, 논리와 비논리 등 양분법적으로 이해되는 것들을 조화시키는 방식을 모색하려 해요.”

셋 중 부부인 노엘과 루키는 “우리 아이가 살 세상은 기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조금 덜 바쁜(less fast)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02) 720-0667


[관람 포인트]

작품 ‘어제의 날씨’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려 든다면, 당신은 이미 기술 중독자. 잠시 휴대전화를 끄고 전시를 관람해 보자. 작가는 바랐다. 전시장에서만이라도 기술로부터 해방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