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가 만난 고수] 와이프 잘 보면 돈이 보인다

"와이프를 잘 관찰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건 페이퍼(보고서)를 본다고 알 수 없다."

27년간 증시를 지켜본 고수의 첫마디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온기선 동양자산운용 대표는 "2년 전부터 아내가 한 주방가구 업체 대리점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업체 주가가 최근 엄청나게 뛰었다"며 "2000년대 초 비데를 놓자고 아내가 노래를 부를 때 비데 업체에 투자했으면 지금 100배 이상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서만 파고드는 펀드매니저들이 오히려 변화에 느리다는 생각에 온 대표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회사 펀드매니저 회의에 직접 참석할 계획이라고 했다. 거기서 자신이 발견한 생활의 변화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온 대표가 매일 새벽 빼놓지 않는 일정은 국선도 명상과 파이낸셜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 경제 신문 탐독이다. 그는 "한국이 일본·중국 등을 제치고 미국 치즈 수입량 세계 2위 국가에 올랐다는 뉴스를 봤는데, 식습관의 서구화가 새로운 투자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사장실을 뜯어고쳐 직원 휴게실로 만들었다. 원목 소재 등을 사용해 유명 커피 전문점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고, 자유로운 분위기 조성차 온 사장은 휴게실 출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름은 휴지통(休止通). '쉬고 멈추면 통한다'는 말로 온 대표가 지은 것이다.

온 대표는 1984년 한국은행에 입행했지만 갑갑한 분위기가 싫어 두 달여 만에 뛰쳐나와 한미은행에 들어갔다. 기업 분석을 제대로 하려면 증권사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애널리스트'라는 용어마저 생소했던 1987년 동원증권 기업분석실로 옮겼다. 아시아 외환 위기가 발생한 후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기업 분석 리포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애널리스트 몸값이 치솟을 무렵 온 대표는 리서치센터장에 올랐다.

2003년엔 수십대1 경쟁률을 뚫고 국민연금 투자전략팀장에 지원해 발탁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2000을 웃돌던 코스피지수가 반 토막 나 1000선이 무너졌을 때 주식운용실장으로 재직하며 증시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당시 연기금의 맏형 격인 국민연금이 나 홀로 코스피를 지키는 수비 부대라는 의미에서 '연기군(軍)'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국민의 은퇴 자금인 국민연금을 증시의 방패막이로 삼아선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온 대표는 "증시를 지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주식을 싸게 살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현실적 판단에 따라 투자했다"고 말했다. 1000선이 무너진 후 2년여 만에 코스피는 2000선을 회복했고 국민연금은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배짱과 분석력을 갖춘 투자의 고수가 전망하는 올해 증시는 어떨까. 온 대표는 "한마디로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5년째 상승해 최고점을 연일 경신 중인 미국 증시가 6년째에도 더 오를 힘이 크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 회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해가며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회사채 발행 여력이 줄어들 거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또 미국 가계 자산 중에서 현금성 자산이 22%로 사상 최저치(19%)에 가까운 점도 개인들의 주식 매입 강도가 줄어들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향후 미국 증시가 10% 정도 조정을 받을 것(주가가 떨어진다는 뜻)으로 내다봤다.

중국도 고성장세가 꺾였고, 부동산 가격 하락→개발업체 부도→은행 부실→업체 자금난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전망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 부동산 거품이 언젠가는 푹 꺼져 중국 정부가 통제 못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한국에선 재무 상태가 위태로운 기업들이 저성장 속에 크게 흔들릴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크레디트 리스크(신용 위험)'임을 지적하며 언제라도 투자한 기업이 부도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온 대표는 현상을 새롭게, 다르게 보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30여년 증시를 관찰한 결과 일반 투자자 심리와 거꾸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90% 이상은 적중한 것 같다"며 "특히 상황이 변하는 변곡점에선 더 그러하다"고 말했다. 온 대표는 현재가 그러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요즘 7~8명 모이는 자리에 나가면 나에게 무슨 주식·펀드에 투자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이를 보면 우리 증시는 아직 상승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은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공채 수익률 대비 3~4%포인트 더한 수익이면 충분하다"며 "10%가 넘는 고수익엔 고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온 대표는 지난 2010년엔 '펀드매니저 금융 사고'로 400여억원 손실을 볼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대신자산운용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은 위기관리 전문가다. 이번엔 작년 12월 동양 부실 회사채(CP) 사태로 위기에 빠진 동양자산운용을 진두지휘할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그는 동양자산운용이 동양 관련 CP에 투자하지 않았고, 최대 주주(73%)도 그룹과 계열 분리된 동양생명이기 때문에 '동양'이라는 이름을 떼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동양이라는 이름이 가진 전통과 가치를 인정해 그냥 유지키로 결정했다. 대신 온 대표는 '웰스 케어(Wealth Care)'라는 회사 모토를 정했다. 첫째도, 둘째도 고객의 이익을 우선해 돌보겠다는 뜻이다.

그는 안전한 투자를 권유했다. 최근 베트남 펀드와 중소형주 펀드를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투자가 한쪽으로 쏠리면 언젠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요즘 투자 원칙은 '골고루'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선 성장주·가치주·중소형주, 해외 주식형 펀드에선 선진국·이머징·프론티어 등에 골고루 투자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