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보다 싼 새집, 전세 시장까지 안정시켜

지난 4일 문을 연 서울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모델하우스에는 하루 평균 5000명이 넘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청약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일반 분양 아파트가 1097가구나 되는데도 1~3순위에서 모두 팔렸다. 아파트 분양 담당자는 "5년 전 인근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가(3.3㎡당 2200만~3073만원)보다 400만원 이상 저렴하게 내놓은 것이 주효(奏效)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착한' 분양가 바람이 불고 있다. 주변 기존 아파트 단지보다 오히려 위치가 좋고 새 집인데도 분양 가격이 저렴하게 책정돼 청약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3~2006년 주택 경기 호황 시절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진원(震源)지이던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최근 주택 시장 안정세를 견인하고 있다.

◇'싼 분양가'가 높은 청약률 비결

지난달 25일 대구 침산동에서 분양한 '화성 파크드림'은 총 835가구 모집에 1순위에서만 2만2131명이 몰렸다. 평균 청약 경쟁률은 38.4대1. 이 아파트의 흥행 비결 역시 분양가였다. 84㎡형 아파트의 분양 가격이 2억8500만원대로 주변의 아파트 시세(3억원)보다 1500만원 낮았다.

GS건설이 서울 강남구 '개나리 6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역삼 자이'도 가격 정책 효과를 봤다. 중대형 주택(전용 114㎡)으로만 구성된 데다 고가(高價)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해 2년 전 인근에 입주한 아파트 시세(3.3㎡당 3240만원)보다 저렴한 가격(3150만원대)에 내놓자 평균 1.8대1의 경쟁률로 청약을 마감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롯데캐슬 골드파크'도 지난 2월 분양 당첨자들을 대상으로 계약을 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97%의 계약률을 기록했다. 롯데건설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분양 심의 때 제시한 분양가(3.3㎡당 1488만원)보다 100만원 이상 낮은 1300만원 중반대에 아파트를 분양했다.

◇건설사, 미분양 우려로 분양가 낮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택 경기 침체를 맛봤던 건설사들이 미분양을 피하기 위해 '가격 인하'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해외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부실로 경영 실적이 악화된 마당에 고(高)분양가를 고집했다가 미분양이 대거 발생할 경우 엄청난 손실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주택 시장에 미분양 주택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데다 경기가 확실한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라며 "건설사들이 여러 현장에 마케팅 비용과 인원을 분산시키기보다 신규 분양을 조기에 마감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1~3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분양 가격은 1801만60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845만5000원)보다 44만원(2.4%) 낮아졌다.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 인하 바람은 기존 주택 거래와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변에 저가(低價)로 공급된 대단지 아파트를 전세로 살던 세입자가 분양받으면서 가파르게 치솟던 전세금 시세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성 동탄2신도시 Y부동산중개소 직원은 "교통편이 좋아지는 데다 동탄1신도시 전세금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어 2신도시로 이사 오려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 분양 가격이 낮아지면서 기존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거래가 위축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주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가 주변 시세보다 낮게 분양하자 인근 '고덕 아이파크' 매매 가격이 최대 5000만원 떨어졌다. 강동구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0.07%)도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집값이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크게 오를 것이란 기대는 적어지면서 주택 수요자들이 분양가에 민감해졌다"며 "분양 아파트는 당장 목돈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어 실수요자들이 당분간 더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