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低音 '천생 DJ' 그녀가 왔다

FM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DJ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좋은 목소리다. 특히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맑은 저음(低音)이라면 음악 방송에 안성맞춤이다. 배우 김미숙(55)의 목소리가 그렇다. 그는 1985년부터 20년 넘게 라디오 DJ를 한 베테랑이다. 2007년 육아 때문에 DJ를 관뒀지만, 라디오 PD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까워했다.

김미숙이 지난 7일 KBS 해피FM '그대 곁에 지금, 김미숙입니다'로 7년 만에 라디오로 돌아왔다. 매일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된다. 지난 15일 막 라디오 녹음 방송을 마친 김미숙과 마주 앉았다.

"2∼3년 전부터 같이하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계속 거절하기도 미안하고, 아이들도 클 만큼 컸으니 DJ로 돌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년 말부터 드라마도 새로 시작해서 몸은 힘들지만, 라디오 부스에서 음악만 들어도 설레요."

DJ는 의외로 고독하다. 보통 매일 1∼2시간 동안 혼자 부스 안에서 원고와 사연을 읽고 PD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는 일을 반복한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미숙은 "음악 들으려고 DJ 한다"고 했다. 이번 프로그램도 게스트와 잡담하는 시간 없이 오로지 사연을 읽고 음악만 튼다.

"부스에서 음악 듣는 시간이면 엄마도 배우도 아닌 자연인 김미숙이 되는 것 같아요. 라디오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도 이장희 등의 음악을 라디오로 듣던 그 순간의 행복감 때문입니다. 천생 DJ 체질이죠."

김미숙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음악을 곁들였다. 올드팝이나 이문세 같은 1980년대 가요를 주로 듣지만, 클래식·재즈부터 최신 팝까지 폭넓게 듣는다. 지금도 아침에는 TV 대신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한다. "선곡은 전적으로 DJ 권한이지만, 저도 의견을 많이 내요. 지금은 카펜터스·비틀스 같은 올드 팝이 많지만, 존 메이어나 제이슨 므라즈 같은 요즘 뮤지션들의 음악도 많이 틀어야죠. 저녁 시간대라서 청취자 연령층이 정말 넓거든요"

음악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기였던 목소리도 고민이다. 비음(鼻音)이 섞이지 않은 맑은 저음에 성량도 풍부하진 않다. 본인 스스로 "심야시간대에 더 맞는 목소리"라고 인정한다.

"방송이 저녁 퇴근시간대니까 일부러 더 밝은 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고된 하루를 마친 분들이 힘이 날 수 있게 해야죠. 그래도 한 청취자가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제 멘트를 듣고 펑펑 울었다는 사연을 보낸 적도 있어요. 이런 분들 때문에 제가 DJ를 관둘 수가 없어요."

인터뷰를 한 다음 날 오전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저녁 라디오를 진행하는 김미숙의 목소리에는 내내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때는 '천생 DJ'가 아니라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의 목소리와 함께 슬퍼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