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원의 의사는 '예술'입니다

환자용 침대가 놓인 병실 벽에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섬 그림이 걸려 있다. 작가 신태수가 화폭에 담은 백령도의 비경(袐境)이다. 그림이 걸린 곳은 여기뿐만 아니다. 진료실에도 대기실에도 복도에도 전시돼 있다. 전시장으로 변한 이곳,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50여년간 병원으로 쓰였다가 지난 1월 병원 신축·이전으로 유휴 시설이 된 옛 백령병원 건물이다. 소독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공간에 예술의 향취가 덧입혀지고 있다.

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에 있는 옛 백령병원을 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구)백령병원 아트 프로젝트'가 이달 시작됐다. 프로젝트 진행 주체는 인천문화재단 산하 '인천아트플랫폼'. 연말까지 국비 10억원을 포함한 20억원을 들여, 지하 2층과 지상 1층 공간(연면적 1589㎡)을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병원으로 쓰였던 곳곳에 예술가 창작스튜디오(레지던시), 전시·공연장, 마을 공동 작업실 등이 들어선다.

9월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앞서 작가들의 파일럿 전시가 진행 중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는 신태수 개인전 '서해비경'이다. 3년간 작가가 백령도와 서해 5도를 오가며 그린 풍경화가 병원 2층에 걸렸다. 백령도에서 특정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건 처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백령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병원이라는 건물 특성상 공장 등 폐산업 시설을 활용한 문화 재생 프로젝트와 사뭇 다르다. 기존 문화 재생 프로젝트가 산업화의 이면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면, 이번 프로젝트에선 전쟁의 상흔을 예술로 치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옛 백령병원은 서해 5도 유일의 종합병원으로 1962년 미국 선교사 부영발(본명 에드워드 모펫) 신부가 설립했다. 50여년간 백령도 주민과 장병의 건강을 책임져 오던 곳이다. 천안함 폭침 사태 때는 일부 전사 장병이 이 병원으로 실려오기도 했다.

인천아트플랫폼 이승미 관장은 "옛 백령병원은 전쟁과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해 온 공간으로, 이제 막 그 무게를 벗은 유휴 공간"이라며 "지금까지 백령도 주민들의 신체적 아픔을 보듬던 장소였다면 이제는 분단의 비극을 예술로 치유하는 장소로 만들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