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잔재로 희망을 쌓다

따스한 봄 햇살마저 서글프다. 슬픔과 책망이 일상을 무기력하게 마비시키는 요즘, 예술을 대한다는 것조차 사치겠다 싶었다. 그런데 제목이 자꾸만 가슴을 두드렸다. '환생, 쓰나미의 기억'.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시작한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靑野文昭·46)의 개인전이다. '환생' '쓰나미' '기억'. 세 단어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구조' '세월호' '애도'로 치환됐다.

23일 전시장 지하에 들어서니 색깔과 문양이 제각각인 좌식 탁자 10여개가 놓여 있다. 가까이 가니 탁자마다 땜질한 흔적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 탁자들은 작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직후 피해 지역을 100여 차례 방문해 가져온 잔해를 이어서 만든 작품이다.

이 중 옥빛 테이블은 쓰나미 때 형체도 없이 쓸려간 이와테현 미야코(宮古)시에 있던 작가 처가의 흔적이다. 쓰나미가 지나간 며칠 뒤 작가는 아내와 처가가 있던 집터를 찾았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마룻바닥에 붙어 있던 녹색 장판뿐이었다. 작가는 유품 정리하듯 집의 기억, 삶의 역사가 밴 장판을 고이 떼어와 센다이(仙臺) 집 탁자에 붙였다.

"탁자란 게 매일 쓰는 일상용품이잖아요. 처가 식구들이 늘 밟고 지내던, 일상의 일부였던 장판을 탁자에 붙임으로써 잃어버린 일상을 현재의 일상으로 환원시켰습니다.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함께 다시 살아가자'라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일본 TV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속 봤다. 마음이 무겁다"던 그는 "쓰나미 때도 모든 게 폐허였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야 했다"고 동병상련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 가게에 걸렸던 코카콜라 간판은 작가 집에 있던 옷장을 만나 설치물로 재탄생했다. 폐허 속에서 건진 누군가의 페트병은 작가의 책, 음복(飮福)할 때 쓰는 나무 상자와 만났다. '과거의 상처'에 '현재의 치유'가 덧대진 예술 추모탑이다. 작가는 꾹꾹 눌러 말했다. "예술은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저 아픔의 잔재를 보존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지요. 재구성하고, 현재를 덧대 복원(復元)함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 그게 제가 작품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6월 1일까지. (02)541-5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