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자리 가져오지 마세요, 꽃구경은 꽃과 대화하는 것

"30여년 전 서울대 임학과에 들어갔을 때도 여자는 저 하나였어요. 지도교수가 반농담 삼아 '여학생이니 꽃을 연구해보면 어떠냐'고 하신 말이 씨가 된 걸까요? 식물분류학을 전공했지요. 그리고 이제 여성으론 처음으로 국립수목원장이 됐네요."

산림청이 문을 연 지 47년 만에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 탄생했다. 지난 21일 취임한 이유미(52) 국립수목원장으로, 2급(이사관)에 해당하는 자리다.

이유미 원장은 1994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수목원과에 임업연구사로 들어간 이래 20년간 식물만 연구해왔다. 멸종 위기의 우리 고유 식물들을 찾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찾아 1년의 반 이상을 집에 가지 못한 해도 있다. "식물 연구라고 하면 고상하고 정적일 것이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사실은 아주 역동적인 일입니다. 작년에도 독도에서 희귀 식물을 여섯 종이나 찾아냈어요."

그렇게 20년간 식물과 대화하고 교감한 끝에 맡은 자리가 경기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장이다. 1999년 국립수목원 창설 멤버인 연구직원이 내부 승진을 거듭해 원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식물 분류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그동안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100가지' '한국의 야생화' 등의 책을 내 일반인들이 숲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국립수목원장으로서 이유미 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국민에게 숲을 돌려주는 것'이다. "국립수목원은 15년간 무궁무진한 식물 데이터를 쌓아왔어요. 연구와 식물 보존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자연과 교감하도록 돕는 게 수목원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꽃 구경 간다'고 하면 돗자리 깔아놓고 도시락 먹는 광경에 익숙한데, 이제 국립수목원에 오는 관람객은 나무를 만나고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오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유미 원장 내외는 '부부 숲 박사'로 유명하다. 남편은 서울대 학과 동기인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이다. 남편이 숲 생태계 전반을 연구한다면, 아내는 그 안에 있는 꽃과 풀, 나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셈이다. 그는 재수생 딸을 둔 학부모다. "딸아이에게 식물학자 되라는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런데 조경학과에 가고 싶다는 걸 보면 피는 못 속이나 봐요."

그가 아는 수없이 많은 꽃과 나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이 원장은 끝내 답하지 못했다. "어떤 식물이든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요. 나무 하나를 연구하면 일주일에서 한 달은 그 나무와 완전히 사랑에 빠져요. 잡초 하나에도 마음이 전해지고요. 그래서 30년이나 숲을 떠날 수 없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