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30 09:58

Active Life | 씨제이스월드 대표 낸시 최

영원한 현역 낸시 최. 반도호텔 안에 자리한 항공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여전히 소공동을 베이스캠프 삼아 일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넘치는 아이디어로 일하는 즐거움을 최고로 꼽는 이 시대 진정한 워킹우먼, 그녀를 만났다.

소공동 일대 웬만한 식당 주인들과 친분이 있는 것은 물론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우편배달부마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직장인 43년차 낸시 최에게 소공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녀의 삶과 더불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성공이나 부에 대한 야망 같은 건 없는 사람이다. 반도호텔 1층의 환전 부스에서 근무하는 대학 선배의 모습이 근사해 보여 반도호텔에 있는 항공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유니폼이 멋져서 KLM네덜란드항공으로 옮겼다. 고급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가 좋아서 외국 출장을 애타게 기다렸고….”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고수하는 최 대표는 패션 스타일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요소라고 역설한다. 들고 있는 가방은 20여 년 전 아들이 선물한 것이다.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고수하는 최 대표는 패션 스타일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요소라고 역설한다. 들고 있는 가방은 20여 년 전 아들이 선물한 것이다.
현역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일하는 그녀에게서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다. 그리고 뒤이은 몇 마디. “대학 졸업 후 취직했을 때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미래 계획같은 건 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적도 없다.” 일하는 여성이 흔치 않던 시절에 취직을 하고, 결혼과 출산 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 하지 않았던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른 말을 하는 그녀, 의자를 당겨 앉아 귀를 기울이게 했다.


내일은 오늘같이, 오늘은 어제같이

누군가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유명해져 있더라’고 했지만, 사실 자고 일어나 성공을 거두는 데에는 오랜 시간의 노력이 축적되어야 하는 법. 항공사 직원, 관광청 마케팅 PR기업 대표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최 대표가 살아온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독일, 노르웨이, 멕시코, 포르투갈, 그리스, 헝가리, 덴마크, 스웨덴 등 그녀와 함께 한 나라를 모두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출국과 경유, 입국 스탬프 수가 700여 개에 달하고, 스탬프 찍을 곳이 없어서 기한 만료 전 여권을 몇 번이나 갱신했다고 하니 그녀가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아왔는지 짐작 가능하다.

“제 나이에 대다수 사람들은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아직까지 일한다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정작 저 자신은 그런 의식을 전혀 못하는 데 말이죠.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일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내일은 오늘같이 오늘은 어제같이‘가 제 삶의 모토죠.

그렇게 꾸준히 살아온 결과가 바로 지금입니다.” 최 대표는 말한다. 인생에는 수천의 순간이 있지만 어느 한 순간 때문에 능력 있어 보이거나 유명해지는 것 같다고. 늘 똑같이 일하고 늘 똑같이 생활하다보면 열정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해외 호텔에서 프론트 직원이 알은체를 하고 고정 객실 열쇠를 내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호텔의 전망 좋은 방은 으레 그녀의 차지다. 이는 20여 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국내 TV 프로그램 ‘열린음악회’를 추진하면서 맺은 인연의 결과. 공연을 성사시키는 데에만 2년 가까이 걸렸고, 100명이 넘는 스태프와 출연진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가서 공연을 진행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항공편과 숙식 마련, 공연장 대관, 청중 동원….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성황리에 잘 마쳤고, 이후 오스트리아 빈 시로부터 요한 스트라우스 골드메달과 오스트리아 관광청의 공로 메달을 받기도 했다.


20년 된 낡은 가방은 최고의 애장품

1968년, 출장을 계기로 해외를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최 대표지만 낯선 문화 속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일화 하나. 호텔 메뉴판에 ‘콘플레이크와 우유’가 눈에 띄더라고. 베이컨이나 햄, 계란 프라이는 들어봤지만 콘플레이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에게 음식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먹어 보지 않은 것을 먹어봐야겠다 싶어 주문했지만, 서빙된 것은 오목한 그릇에 담긴 과자와 딸기, 우유 한 잔이 전부였다. 실망하며 콘플레이크를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와삭와삭 씹다보니, 옆 테이블 외국인은 그릇에 우유를 부어 먹고 있더라고.

“1960년대 후반인데 우리나라에 콘플레이크 같은 게 있었을리 없잖아요. 그런데, 이미 우유를 마시고 난 후라 당황스럽고 민망하더라고요(웃음). 요즘도 작은 실수를 할 때가 있는데, 해외여행을 다니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곳이니까.”

어디서나 당당한 최 대표의 든든한 응원군은 다름 아닌 아들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최 대표가 마케팅 PR 전문 회사를 차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였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은 학생에게는 부담이 되는 명품 서류가방을 사서 보냈다. ‘이 가방을 들고 더 커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은 카드와 함께. 이 한 마디는 최 대표의 마음 한 곳에 늘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다소 낡았지만 아들이 선물한 서류 가방은 그녀가 꼽는 최고의 애장품이다.


낸시 최는 마케팅 PR 전문 기업 (주)씨제이스월드의 대표로 투어리즘에 기초를 둔 PR업계의 베테랑이며 이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스칸디나비안 관광청, 독일 관광청 대표를 역임하며 우리나라에 외국의 매력을 알리기도 했고, 평창 동계올림픽(2003~2007)과 한국 방문의 해(2001)를 홍보하며 해외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