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氣 안 좋아서 기부금·R&D투자 더 늘렸죠"

5월 가정의 달은 컴포트슈즈(편안한 신발) 업계의 매출이 집중되는 시기다. '걷는 문화' 확산으로, 컴포트슈즈 소비자층이 60대에서 40~50대로 낮아지면서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국내 컴포트슈즈 시장은 대기업·외국계 회사도 아닌 국내 중소기업 안토니가 수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원길(金元吉·53) 대표가 1991년 창업한 안토니는 외국계 경쟁 브랜드인 락포트·사스·제옥스 등을 제친 전형적인 강소(强小)기업이다. 2011년 인수한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Vainer)'와 자체 브랜드 '안토니(Antoni)'가 대표 제품이다. 5월 대목을 맞아 안토니는 11일까지 최대 40% 할인에 들어가는 등 치열한 마케팅 전쟁에 돌입했다.

지난 30일 찾은 경기도 일산의 안토니 공장에선 60여 명의 장인(匠人)이 앉아 수십여 종의 구두를 뚝딱뚝딱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소 10년에서 많게는 44년 경력의 장인들이다. 이곳에서 하루 600~1000족, 연간 24만 족의 구두를 생산한다.

김 대표 역시 제화업계에서 몇 안 되는 구두 기술자 출신 CEO(최고경영자)다. 충남 당진에서 빈농(貧農)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의 학력은 중졸(中卒)이 전부다. 18세 때 무작정 상경, 영등포의 작은 구둣방에서 견습공으로 구두 기술을 배웠다. 상경 6년 만에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메달을 땄다. 지금은 없어진 '케리부룩'이란 회사를 거쳐, 마침내 맨손으로 국내 컴포트슈즈 업계 1위 회사를 일궈냈다.

김 대표는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CEO로도 유명하다. 매년 군(軍) 생활 잘하는 병사 12명을 뽑아 호주·유럽 여행을 보내주고, 5월이면 수천만원을 들여 지역 주민과 독거노인을 불러 '효도잔치'를 벌인다. 천안함·제2연평해전과 같은 국가적 참사(慘事) 성금 모금에도 빠지지 않는다. 학업 성적보단 인성이 좋은 학생들을 선정해 매년 4000만원 이상의 장학금도 준다. 그는 "올해는 8억원을 사회공헌 예산으로 마련해놨다"고 했다. 작년엔 6억5000만원을 사회공헌에 썼지만 올해는 경기(景氣)가 어려워 예산을 더 올렸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내수(內需) 경기가 어려운 지금이 가장 바쁠 때"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에선 '불황'이란 말이 금기어예요. 말만 한다고 누가 도와주나요. 이럴수록 더 열심히 신제품 개발하고, 사회공헌 해야 한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안토니는 작년 봄 50개였던 신제품을, 올해엔 80여 개로 늘렸다. 매출의 5% 안팎이었던 연구개발(R&D) 비용도 올해는 7%대로 높였다.

안토니는 독특한 회사 문화로도 유명하다. 직원들 마음대로 타라고 회사 앞마당에 1억원짜리 '벤츠 스포츠카'를 사놓고 말(馬) 두 필, 모터보트도 6대나 배치해 놨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부러웠던 일을 우리 직원들은 마음껏 하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의 사무실엔 자신의 50여 년 인생을 담아 지었다는 노랫말이 붙어 있었다. '(중략) 지금은 세찬 눈보라 힘들겠지만/이 순간 지나고 나면 봄날은 온다/힘들어도 할 거야/시련아 덤벼라/힘든 건 나의 추억이니까.' 그는 "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봉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