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우리 모두의 책임… 함부로 살아온 것 참회해야

충남 예산 수덕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덕숭산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정혜사. 수덕사의 참선도량인 정혜사 마당에서 내려다본 세상엔 봄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부처님오신날(6일)을 앞둔 기쁨과 생기보다는 적요함이 덕숭산을 휘감고 있었다. 1955년 만 열세 살에 수덕사로 출가, 올해로 수덕사 생활 60년째인 덕숭총림 방장(方丈) 설정(雪靖·72) 스님. 4월 30일 정혜사에서 만난 설정 스님은 "요즘은 화두(話頭) 공부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세월호 사고 때문이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 사회도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봄이 봄 같지 않습니다. 희생자와 가족들을 지금 그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 거사의 말처럼 저 역시 국민이 느끼는 고통, 슬픔을 똑같이 느낍니다. 저도 요즘 아침저녁으로 기도드리고 있지만 소화도 잘 안 되고 잠도 설칩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예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은 중생(衆生)의 무명(無明·어리석음)을 밝혀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청정심(淸淨心)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고를 겪은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우리가 아직도 얼마나 무명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세월호 선장 등 직접적 관계자들은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수행자 입장에서 이 사고의 원인을 깊게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우리가 너무 함부로 살아왔구나 참회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의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성장 위주로 치달려 오느라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했습니다. 성장하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사고, 탐욕과 이기심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탐진치(貪瞋癡)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요. 삼독은 나도 불행하게 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반면 본래의 맑은 심성을 찾게 되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우며 세상을 밝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지요. 이번 사고는 우리 국민 전체에 주는 크나큰 경종(警鐘)입니다. 또다시 까맣게 잊고 넘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청정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청정심은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섯 가지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굳센 각오인 강심(强心), 불의를 거부하는 양심의 브레이크인 정심(正心) 그리고 자비심(慈悲心), 치밀하고 정성을 다하는 생각인 세심(細心), 열린 마음인 대심(大心), 정진하는 마음인 일심(一心)입니다. 이번 사고는 특히 정심(正心)과 세심(細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직분에 걸맞은 양심의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또 누군가 꼼꼼하게 챙겼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설정 스님은 "무엇보다 '~답게'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은 당리당략을 떠나 진정한 정치인답게, 공무원은 멸사봉공해야 하는 공무원답게 살고 있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다운 모습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승객을 팽개치고 빠져나온 선원들, 반대로 지금도 물속에서 잠수하며 고생하는 구조대원을 보세요. 저 역시 수행자로서 무명을 밝히고 세상에 이익을 주려 제대로 노력했는지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이 사고를 전기(轉機)로 삼아 국민정신 개조·변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모두가 법질서를 존중하며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총리실 산하에 새 기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신변화가 먼저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스님과 함께 스님들이 가꾸는 텃밭을 둘러봤다.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전통으로 유명한 수덕사답게 텃밭에선 쑥갓·상추·감자·배추·무·엄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절의 반찬거리를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배추와 감자 잎을 어루만지던 설정 스님은 "흙은 이렇게 진실하다"고 말했다. 텃밭에서 돌아오는 길,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평소 "삭풍(朔風)도 늘 부는 게 아니고 소나기도 온종일 오지 않는다"고 용기를 주시곤 했습니다.

"태풍이 불어올 때는 모든 것이 날아가고 부서지고 당황스럽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비와 바람이 그쳤을 때 우리가 어떻게 정신 차려 살아야 할까….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 용기는 모든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뎌나가며 나라 전체가 엄청난 산고(産苦)를 겪더라도 새 기틀을 만들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 분노와 시기를 내려놓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하는 자세로 마음병을 고치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합니다."

☞설정(雪靖) 스님은

1942년 수덕사가 자리한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속가(俗家) 부친이 만공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을 마치고 범어사·봉암사 선원 등에서 수행했다. 30대 중반부터 수덕사 주지(1978~1988)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1994~1998)을 지냈다. 2009년 덕숭총림 수덕사의 제4대 방장(方丈)에 추대됐다. 방장은 선원·강원·율원·염불원 등을 갖춘 총림(叢林·종합 수도원)의 최고 어른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