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안녕! 서커스처럼 섬연(纖姸)했던 내 젊음이여…." 연출가 황재헌의 말이다. 극중 인물 연옥과 정민속에 담긴 내 모습을 바라본다. 꽃피고 지는 것은 순간인데…. 꽃잎 떨 군 후에야 잎이 피어나는 꽃나무가 벚나무이다.
 
어둠이 깊어진 숲 속에 구름처럼 하얗게 피어 있는 벚꽃 같은 사랑이다. 사랑은 떠나보낸 후에서야 그것이 사랑인 줄 서서히 깨달아가게 된다. 이별을 겪어 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사랑의 방정식이며, 이별이라는 경험으로 깨달아가는 사랑의 가치관이다. 이별이 다가온 후에서야 말할 수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소유가 아닌 가슴을 내어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내 방법의 사랑이 타인에게도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간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만난 후에서야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항상 이 모양입니다. 사람을 귀찮게 만들죠. 그런데 왜? 정민이가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을까요?” 끊임없는 감정의 시행착오를 이어가면서도 연옥과 정민은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오류임을 알지 못한다.
 
국제분쟁전문기자와 대학교수. 사랑은 지식의 키가 자라나는 것과는 관계없는 상대를 바라보는 가슴의 넓이이다. 연옥이 지니고 있는 자존심과 정민의 시선에서 그들의 마음이 자라고 있는 성장통을 바라본다. 그러나 연옥의 사랑이 슬프지 않아서 아프지 않게 잠들 수 있음이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 남자와 여자는 바라보는 별의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그들이 지니고 함께 했던 시간들이 교차한다. 서로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나 두 사람 사이에 남겨진 흔적들은 덜 마른 물감처럼 아주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 위로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겨진다.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른 채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내게 하는 어설픈 사랑을 하는 연옥과 정민이지만 서로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따스해서 아프지 않은 마음의 귀갓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별 앞에서 만나게 되는 사랑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진정한 어른으로 탈바꿈을 시작한다.
 
소유가 아닌 사랑, 비겁함, 역사, 죽음으로 만나기 위한 이유에 거창한 주제를 만들어가고 소소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 비로소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계산의 사랑법이 아니어서 나는 고마웠다.
 
수현재! 동숭로에 배우 조재현이 지어놓은 반듯한 집이다. 그 집을 공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연극인들의 놀이터를 만들었고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일상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의 개관작으로 선을 보인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다. 2012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평균 객석점유율 99%를 기록했고 2013년 대학로에서 앙코르공연으로 역대 누적 관객 수 5만 명을 돌파한 황재헌 연출의 앙코르 공연이다.

배우 조재현이 어린 날의 놀이터라고 말하고 있는 동숭로, 마로니에 공원은 내 여고 시절에도 역시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교복을 입고 편안하게 오가던 거리이다. 아직도 그곳에는 여고 시절에 함께 다니던 7명의 친구들 웃음이 꿈으로 남아 있다. 대학로 앞의 중국집이 그러하고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진 마로니에 나무 아래 가을날 벤치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 지어진 공연장의 저녁 시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던 시간이었다.
 
그 거리의 불빛이 따스하게 보이고 마로니에 공원에 불어오던 봄날의 미풍처럼 향기로운 단어로 조금은 비어있는 듯한 모습…. 그래서 그 자리에 사랑하는 마음 하나를 심어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