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청빈한 디자인… 담백하구나, 너

'소비는 낭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필요악(必要惡)으로 여겨져 왔다. 막스 베버도 '(소비의) 유행' 없이 자본주의는 지탱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만난 몇몇 디자인 거장(巨匠)들은 그러나 "진정한 소비란 절대 버리지 않을 물건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인 미켈레 데 루키(Lucchi)는 "물건을 사랑하게 되면 그걸 끊임없이 고쳐 쓰면서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어진다. 좋은 가구는 영원히 버릴 수 없다. 어떤 소비는 때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프랑스 개념미술가 얀 케르살레(Kersale)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언제 어디에서도 나와 함께하는 것. 내 은밀한 추억과 함께 낡아가는 것. 가구란 결국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소비는 낭비가 아니다.

이들이 최근 프랑스 회사 에르메스와 손을 잡고 만든 컬렉션을 두고 '검박한 럭셔리(frugal luxury)'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그란 삼각형' 같은 형용 모순이지만, 이들은 믿는다. "어떤 소비는 가장 청빈한 형태의 삶으로 가는 문"이라고. 이 소비는 과연 새로운 유행이 될 수 있을까.

◇가구 디자인, 검박한 럭셔리로 가다

미켈레 데 루키가 만든 조명은 군살 한 점 없는 완벽한 뼈대처럼 보인다. 강철과 가죽, LED로만 이뤄져 있다. 루키는 "날렵하고도 매끈한 선(線)으로 완성된 조형미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랑파데르 아르쉬' '랑프 드 트라바이' 같은 작품은 모두 물 흐르듯 부드러운 곡선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잡다한 장식은 없다. 에르메스 메종 총괄 디렉터인 엘레네 뒤브레(Dubrule)는 "집과 사람을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그 본질에 주력했다. 남이 보라고, 과시하려고 들여놓는 가구가 아니다"고 했다. 조명을 연결하는 전선은 모두 가죽으로 감쌌다. 미켈레는 "대를 물려서도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마감했다"라고 했다.

케르살레가 만든 휴대용 조명 '랑테른 데르메스'는 네 개의 조명이 한데 모여 원통형을 이룬다. 각각 떼어서도, 한데 모아서도 쓸 수 있다.

◇더딘 손맛, 장인의 땀

각각의 작품은 모두 스케치부터 최종 완성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 케르살레는 "구현이 쉽진 않았다. 아름다우면서도 가벼워야 했고, 쉽게 깨지거나 망가져서도 안 됐다. 완벽한 유리, 미려한 마감, 한 번 충전하면 8시간 넘게 지속하는 광원까지…. 미감과 내구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에르메스는 디자이너 장 미셸 프랑크가 1924년 처음 만들었던 가죽 의자도 한정판으로 다시 만들어 내놨다. 한 장의 가죽을 한 번도 자르지 않고 통으로 완성한 가볍고도 단단한 의자다. 벽지도 발표했다. 에메랄드·비취·황마·레몬·밀 같은 천연 재료의 빛깔을 손 자수와 첨단 인쇄로 구현했다. 왜 이렇게까지 애써서 만들까. 뒤브레는 말했다. "가구는 결국 우리의 내면을 채우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