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왔다, 웃음이 그리워서

키 160㎝ 남짓한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후배들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14일 오전 경기 일산 MBC 7층 야외 테라스, 6㎜ 카메라가 돌아가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코미디 다시 시작한다니까 밖에서 다들 뭐라 그러는 줄 알아? 코미디 황제의 귀환이니 신의 한수니, 아주 난리가 났어." 두 번의 NG가 났다. 작가가 한마디 했다. "업(up)돼서 하지 마시고, 툭툭 치듯이 다시 한 번 갈게요." 코미디언 이홍렬(60)이 안경을 고쳐 썼다.

이홍렬이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MBC '코미디의 길')으로 돌아왔다. 1994년 MBC '오늘은 좋은날'의 인기 코너 '귀곡산장' 뒤 20년 만이다. '귀곡산장' 연출을 맡았던 이응주 PD가 그를 직접 섭외했다. "'페이크(가짜) 다큐' 형식이라길래 승낙했어요. 한 번도 안 해본 거니까." 그의 출연분은 전성기 시절의 영광에 익숙한 고참 코미디언 이홍렬이 20년 만에 새파랗게 어린 무명 코미디언과 함께 코너를 짜 무대에 올리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그린다. "느지막한 나이에 잘 놀고, 후배들 끌어주는 역할까지 할 수 있으니 감사하죠." 음력 생일을 쇠는 이홍렬은 22일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콧구멍에 500원을 집어넣던 '도루묵 여사'나 터무니없이 작은 옷을 입고 뒤뚱거리던 '큰 집 사람들', 촐싹거리는 할머니로 분장했던 '귀곡산장'에서 주가를 높인 뒤 그는 곧 MC로 전향했다. SBS '이홍렬 쇼'(1995) 같은 토크쇼로 재미도 봤지만, 곧 전성기는 저물었다. 이날 대본엔 이홍렬을 자극하는 코멘트도 담겨 있었다. "이홍렬씨가 다시 코미디를 하신다고요? 요즘 바둑 채널에도 코미디 프로가 있어요?"(박미선) "이제 와서 무슨 코미디를 한다 그래, 올드하게."(박명수) 이홍렬이 웃으며 말했다. "연예인에겐 정년이 없다지만,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비단방석에만 앉아있다 늙을 순 없죠."

점심을 할 겸 근처 콩나물국밥 집으로 갔다. "아까 후배들이 나한테 인사하는 거 봤죠? 날 얼마나 어려워하겠어요. 근데 권위의식만 버리면 되레 내가 후배들 뒷배가 돼줄 수도 있겠더라고요." 함께 연기하는 김용재(32)는 "예전엔 (이홍렬이) 후배들을 많이 때렸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성격이 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탓에 관절도 뻐근하고, 전립선 비대증도 왔지만 아직 가야 할 코미디의 길이 있다. "코미디는 꿈꾸기 시작한 중2 때부터 제 전부예요.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신소리 하나 툭 던질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