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번역했다, 靑磁도 예술도

유적 발굴장에서 갓 출토된 유물 조각이 널려 있나 했다. 12각형 하얀 좌대 위에서 몽글몽글 작은 청자 조각을 한몸에 붙인 채 은은히 옥빛을 발산하는 파편 뭉치 1000개.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숨죽이고 살포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4일(현지 시각) 아트 바젤 홍콩 '인카운터(Encounters)'전에 전시된 작가 이수경(51·사진)의 작품 'Thousand(천)' 앞에서 관람객은 예술에 묵상(默想)하는 신도가 된 듯했다. 인카운터는 이번 페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17명의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Thousand'는 청자 파편 1만여개를 에폭시로 접착하고 이음매를 금박으로 입혀 만든 1000개 조각이다. 이 작업을 하는 데 꼬박 3년을 매달렸다. 작가는 작업실 딸린 서울 부암동 다락방에서 새우잠 자며 파편과 씨름했다. 근육은 뻑뻑해졌고, 눈은 침침해졌다.

"맘은 못 믿어도 몸은 믿어요. 예전엔 중매쟁이처럼 작업했는데 2006년부터 몸을 확실히 주고 작업했어요." 작가는 시원하게 웃었다.

작가와 도자기의 인연은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에서 개최된 현대도자비엔날레에서 시작됐다. 현지 도예가에게 시인 김상옥(1920~2004)이 백자를 소재로 쓴 시조 '백자부(백자에 부쳐)'를 읽어주고 백자를 만들게 했다. 작품 제목은 '번역된 도자기(Translated Vase)'였다. "백자라는 오브제를 시를 통해 문자로 번역한 것을 다시 이탈리아 장인에게 오브제로 번역하도록 했어요. 이 과정에서 분명 백자라는 처음의 오브제는 오역(誤譯)됐을 수밖에 없죠."

파편 붙이는 작업은 2006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때부터 시작했다. 도예가인 친구의 친척집에 갔다가 우연히 깨진 도자기 파편 더미를 보고 퍼즐 맞추듯 붙여본 게 계기였다. "작가의 몸은 번역기예요. 외부 정보를 예민한 감각으로 빨아들인 뒤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는 거죠. 전 깨진 파편을 재조합해 새 번역물을 만든 거고요."

백자 조각만 쓰다가 몇 해 전부턴 청자 조각도 쓴다. 이번 작품은 강진까지 가서 싹싹 긁어온 강진요(康津窯) 조각으로 만들었다. 둥그스름한 백자로 만든 작품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마냥 뭉실뭉실하다. 장식 많고 날렵한 청자에서 탄생한 작품은 실루엣이 복잡하고 오밀조밀하다. "백자 작품은 순풍순풍 애 잘 낳아주는 본처, 청자 작품은 원 나잇 스탠딩부터 하고 사귀는 여자 같아요." 재기 발랄 작가의 발칙한 비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