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자연을 불어넣은 남자

딱딱한 호텔 건물이 이 남자의 손에서 생명을 얻었다. 로비 벽면이 작품이 되고, 복도는 갤러리가 됐다. 중국 최고국가행정기관인 국무원으로부터 도예가 최초로 '특별공헌 예술가' 칭호를 받은 주러겅(朱樂耕·62).

최근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 문을 연 켄싱턴 제주 호텔 로비는 주러겅의 대형 도자벽화 두 점으로 벽면을 채웠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로 28.7m, 세로 9.4m 크기의 초대형 도자벽화가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조개껍데기와 자갈을 수놓은 듯한 작품의 제목은 '만개한 생명'. 2층 로비 벽면에는 붉은색 바탕에 크고 작은 구름을 붙인 또 다른 도자벽화 '하늘과 물의 이미지'를 설치했다. 호텔 입구와 복도 곳곳에 말·소의 토우 10여점 등 그가 빚은 도자기 작품들이 놓였다.

"전 세계 관람객들은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먼저 봅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탁 트인 들판.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호텔이라는 쉼터에서 예술 작품을 보며 자기 마음을 추슬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작가는 '현존하는 중국 최고 도예가'라는 명성에 비해 소탈했다. '만개한 생명'을 가리키며 그는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여러 기호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가 보였다. "2층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측면에서 봐야 이 작품의 흐름이 보여요.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생명체처럼 출렁이고 있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는 "벽화는 회화와 달리 공간예술이라 건물의 가치를 빛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며 "특히 오후 3시에 건축물의 자연광에서 오는 반사와 내부 조명이 더해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주러겅은 생활 자기에서 시작된 도예 예술을 건축과 환경으로 확대시킨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얼핏 돌덩이처럼 보이는 것들도 모두 흙으로 빚고 구운 세라믹이다. 가로 50㎝, 세로 50㎝ 도판 1600개를 굽고, 판이 마르면 그 위에 꽃과 나뭇잎, 구름 문양을 올려 1300도에서 다시 구웠다. 작가는 "현대건축물은 콘크리트나 강철 등으로 만들어 차갑지만, 흙은 온기가 있다"며 "도시에서 쉼터로 온 사람들이 흙으로 만든 벽화를 보면서 위로받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송대부터 이어져온 도자기의 고장 징더전(景德鎭)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나는 도자기를 위해 태어났고, 다른 건 할 줄도 모르고 해볼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1989년 '묘가풍경'이란 작품으로 징더전시 도예미술 백화상 1등을 받았고,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03년에는 사방 벽면에 도자기를 붙인 '도자기 음악홀'을 완성했다.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특수학교인 밀알학교가 세운 서울 일원동 '세라믹 팔레스홀'이다. 한국 도예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는 그는 "예술적·조형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비취색 고려청자를 잇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랜드그룹이 오픈한 켄싱턴 제주 호텔은 아트 갤러리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하다. 주러겅 외에도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 작품 총 197점이 호텔 내부 곳곳에 전시됐다. 복도를 걷다가 사진작가 배병우와 동양화가 이왈종, 서양화가 황주리의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