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걸렸다, 그리움 담은 한마디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19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지상 20m에 새 글판〈사진〉이 올라갔다. 교보생명이 내건 '광화문 글판 여름편'은 정호승 시인의 시 '풍경 달다'에서 가져왔다. 판화가 이철수의 간결한 글씨와 단아한 그림을 함께 담았다. 오는 8월 말까지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을 비롯해 전국 5곳에 같은 글판이 걸린다.

'풍경 달다'는 정호승 시인이 전남 화순 운주사에 다녀와 쓴 시다. 풍경(風磬)은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으로,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소리가 난다. 시인이 운주사에 간 때도 신록이 푸른 5월이었다고 한다.

광화문 글판은 삭막한 도시 풍경에 여백과 같다. 계절마다 새 문안(文案)을 골라 왔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는 이번엔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 장석남, 소설가 한강, 카피라이터 유제상을 비롯해 문안선정위원 7명은 이런 공기를 글판에 불어넣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그리운 마음을 담으면서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선정하려 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읽고 싶은 대로 문구를 해석한다. 광화문 글판의 숙명이다. 2008년 봄엔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빌려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 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라고 걸었더니, "왜 정권 교체기에 추락이라는 표현을 썼느냐"는 항의가 들어왔다.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전에 걸린 글판은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