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에 투기 자금 급격히 유입

아직 원자재 수퍼 사이클(호황)은 끝나지 않은 것일까.

작년 미국이 돈 풀기를 중단할 것으로 예상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1999년부터 이어진 원자재 강세장이 끝날지, 계속될지를 두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벌어졌다. 일단은 원자재 호황기가 저물 것이라고 주장한 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작년 6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양적 완화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힌 이후 금과 원유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 자금이 또다시 늘어나고 있다. 원자재 가격지수는 전 세계 주가지수보다 더 많이 오르고 있다.

◇농산물, 원유 등 원자재 선물 옵션 투기 급증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 TC)에 따르면 19개 원자재 선물 옵션에 대한 비상업적(투기) 순매수 포지션이 작년 11월 말 80만 계약에서 4월 말 193만 계약으로 배 이상 늘었다. 순매수 포지션이 증가했다는 것은 가격이 지금보다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 많은 투자 자금이 유입됐다는 뜻이다.

품목별로 보면 농산물에 대한 투자가 많이 늘었다. 작년 말 옥수수, 소맥, 커피는 수급이 안정되면서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은 순매도 상태였지만 올 들어 순매수로 전환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휘발유 등 에너지에 대한 순매수 포지션도 작년 27만 계약에서 올해 55만 계약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자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있다. 24개 주요 원자재 가격을 종합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상품지수(GSCI)는 올해 1~4월 3.7% 올랐다. 같은 기간 2.2% 오른 세계 평균 주가지수(MSCI World 지수), 2.6% 오른 미국 S&P500지수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공급 감소 우려에 세계 경기 회복 전망도

원자재가 다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기상 이변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 ▲세계경기 회복 전망 세 가지로 요약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미 국립해양대기처(NOAA)는 올여름과 가을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50%라고 예보했다. 엘니뇨는 남미 인근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주변보다 2~10도가량 높아지는 이상 고온 현상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동남아시아와 북미 지역에도 장마, 가뭄, 강추위 등 기상이변이 나타나는데 농작물 생산량이 줄고 가격은 오르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도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다. 밀, 옥수수의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연초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시적 상황이어서 원자재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 갈등 상황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또 대형 투자은행들은 주식·채권 투자 수익률이 주춤한 사이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원자재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돼 원자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씨티그룹도 1분기에 원자재 인덱스 펀드가 관리하는 자산 규모가 작년 말보다 10% 이상 증가했다면서 향후 원자재 투자를 늘리라고 조언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원자재 투자가 다시 과열되며 가격이 급등할 것을 우려한다. 원자재를 수입한 뒤 상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수출해 돈을 버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