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化업계, 무리한 증설 경쟁 후유증에 신음

현대오일뱅크와 일본 코스모오일 합작사인 현대코스모는 다음 달부터 80만t 규모의 파라자일렌(para-xylene·이하 PX) 설비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1996년부터 매년 50만t 규모의 PX 공장을 가동하던 현대코스모는 2년 전 연산 80만t 규모의 2공장을 증설해 총 130만t을 생산해왔다. 하지만 증설 2년 만에 2공장을 멈추기로 한 것이다. 고인수 현대오일뱅크 부장은 "PX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 설비 보수를 겸해 2공장 가동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공장에서 3개의 PX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인 GS칼텍스는 현재 생산량(연간 135만t)을 10~20% 줄이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에쓰오일·삼성토탈 등은 올 2월부터 10~20% 감산에 들어갔고 삼성토탈은 다음 달부터 추가 감산을 검토하고 있다. PX란 의류용 섬유, 페트(PET)병 등에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중국 수요 감소+공급 과잉으로 가격 급락

석유화학 기업들이 PX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산하는 이유는 뭘까? 1990년대 내수용으로 만들던 PX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산업화가 가속하면서 대(對)중국 수출의 핵심 품목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업계에선 "최근 5년간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PX 수요가 매년 7%씩 성장해 2016년까지 이런 성장세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에쓰오일이 1조3000억원을 투자해 2011년 연산 180만t 규모의 PX 생산 시설을 만들고, 현대코스모가 6000억원을 투입해 2012년 80만t 규모를 추가 증설한 것은 이런 판단에서였다. GS칼텍스·SK에너지·SK이노베이션·삼성토탈 등은 2012년부터 각각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며 PX 생산 시설을 늘렸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기업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토종 기업들이 PX 시설을 늘리며 자급률을 높여 갔다는 점이다. 중국 내 PX 생산 능력은 2012년 844만t에서 올해 1114만t으로 2년 전 대비 32% 정도 늘었다. 국영 석유 기업인 시노펙(Sinopec·中石化)은 다음 달까지 하이난(海南)에 60만t 규모의 PX 공장을 추가 완공한다. 인도·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도 공격적으로 PX 물량을 증설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PX 생산량은 2012년 3825만t에서 지난해 4113만t, 올해는 4469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다 최근 중국 경기의 둔화로 PX 수요가 주춤하는 바람에 공급 과잉이 심화돼 PX 가격은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에너지 정보 제공 업체 '플래츠(Platts)'에 따르면 2013년 8월 1t당 1502달러이던 PX 가격은 올 3월 1199달러로 떨어졌다. 그 결과 국내 관련 업계들의 수익도 급감하고 있다. 삼성토탈·에쓰오일·SK이노베이션·GS칼텍스 등의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1분기 대비 54~85%씩 줄었다. 삼성토탈 민병기 상무는 "전체 매출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PX 등 화성 부문 수익이 하락해 영업이익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PX 하락세 계속… 돌파구는?

더 심각한 것은 이런 PX 공급 과잉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 짓고 있는 PX 공장은 SK이노베이션·삼성토탈·GS칼텍스 등 4곳이다. 이 프로젝트들이 모두 완공되는 내년에 국내 PX 생산 능력은 1070만t으로 4년 만에 2배 정도 늘어날 예정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생산되는 PX 물량까지 합하면 2016년 전 세계 PX 생산 능력은 5402만t으로 추정된다(국제 조사기관 'IHS').

김평중 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PX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2022년까지 글로벌 공급 과잉이 지속될 것"이라며 "2017년까지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파라자일렌(PX)

의류·산업용 섬유, 페트(PET)병, LCD(액정표시장치) 필름, 자동차 부품 등에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