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서울역 문화박물관 - 여가의 기술

꽃나무가 조금씩 여린 분홍의 빛을 띄우기 시작하는 날에 분홍이 머금고 있는 색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분홍이 전달하는 계절의 모습으로 우리는 모두 햇살 환한 밝음의 거리를 그리워한다. 봄이 주는 목마름이다. 여가라는 단어가 나의 봄을 유혹하고 있었다.
 
봄은 아직 조금의 모습을 보이는데 나는 그 봄을 성급하게 만나고 싶었다. 여가의 기술이라는 문장의 느낌과는 다르게 서울역 근처는 항상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바라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외면하면서 걸어가는 거리에서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이 항상 진하게 전이가 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미안하다는 감정이 밝은 햇살에 어울리지 않게 싸아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어찌하랴. 각각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는 서로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단단함으로 무장한 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이미 역사문화공간에는 봄을 알리는 꽃들의 모습과 공기로 외부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세상을 소유하고 있음이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흐름이던가. 각각의 꽃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사고의 방법도 판이하다. 내게는 이것이 필요하다는 위로로 마음을 환기하면서 바라보는 봄날의 꽃 색깔이 진한 그리움처럼 다가온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기심은 색과 공기의 조화로 조금 전의 우울함을 말끔히 거두어가고 있다. 요즈음의 일상에서 여가를 즐기는 기술은 언제나 느긋하게라는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한 시선을 모아간다.
 
국내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설치작품이 중앙 홀 가득 채워지고 그곳은 마치 오래된 웅장한 대륙의 협곡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모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내는 소리의 공간이다. 갈 수 없는 그리움으로 향하는 먼 곳의 바람 소리로 다가온다.

전국에서 수집한 600여 개의 스피커로 만들어진 소리의 산(Mountain)은 티베트에서 볼 수 있는 멀고 아스라한 히말라야 산맥의 협곡이 되어 고원의 바람 소리가 되었다가 현대문명이 이루어내는 기계음이 되기도 하다가 현대인이 가장 갈구하는 명상의 소리가 되어 내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안내자가 되어준다. 소리가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그 소리의 울림은 가슴의 파동이 되어 알 수 없는 흔들림을 이어간다.
 
소리는 아름다운 꽃이 되어 봄날의 정원으로 나를 이끌고 간다.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연못 속으로 몸을 던진 영혼이 재탄생되어 피어나는 나르시시즘으로 표현되는 꽃 수선화처럼 청순한 아름다움이 단절된 공간에서 봄날의 신선함을 선사한다.
 
지중해의 맑은 공기 아래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수선화라던 누군가의 말이 기억될 만큼 꽃잎은 여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살짝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꽃잎은 스러질 것 같은 여린 모습이다. 맑아서 더 고운 마음속 정원 같은 모습의 변화이다.
 

변화로 즐기는 충만함이 세상 가득한 따스함으로 다가와 내게 손을 내미는 시간으로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먼 나라 몽골의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충만의 시간을 마음에서 즐겨본다. 작곡자이자 사운드아티스트인 Kayip(이우준)의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는 63m 크기의 자연풍광을 파노라마로 펼쳐간다.
 
따듯한 별의 마음이 되어보는 시간의 즐거움은 석양의 빛으로 아름다운 변화를 시도한다. 고비사막의 넓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이 전달하는 신선함으로 영혼의 세계를 지나 천장에 가득 채워진 글자로 만나는 별빛 가득한 하늘의 낭만이다. 눈을 감고 사막의 어두운 하늘을 비행하는 생텍쥐페리가 되어본다.
 
별이 가득한 사막의 하늘은 어느 만큼의 거리로 가능해질까. 어린 왕자가 만나는 사막의 여우가 나의 손을 이끌고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별의 세상으로 가고 싶은 소망이 그 천장에 가득하다. 이미 나는 별이 가득하여 어둠이 하나의 점으로 남겨지는 사막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
 

마음이 끌고 가는 상상 속의 세상에서 누려보는 여유는 그곳에서만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의 시도가 이끌어내는 새로움의 탄생이다. 낯선 공간으로 향하는 상상의 여행은 청각과 시각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소리로서 가능해진다.
 
음악이 진동으로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나비의 날갯짓이다. 내가 유도해가는 자연의 흐름이 경이롭다. 현실의 세상이 아니고 우리가 언제나 꿈꾸고 동경하는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상상 속에서 가상의 현실로 만나는 현대문명이 이루어가는 기술이다. 일상의 탈출을 시도하고 낯섦으로 만나는 생각의 여행에서 만나는 봄날의 하루가 즐거움으로 그 모습을 변형시킨다.
 
여유는 여행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다가 언제나 기대치를 동반하는 설렘으로 모습을 나타낸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바라보는 쉼표의 시간이다. 낯선 곳을 향하는 자연의 모습이 기다림이라는 내면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공간이다.
 

문화와 역사의 사적지 284호로 지정된 서울역 문화박물관의 새로운 탄생은 일상에 지치고 시들어가는 여행객들에게 잠시 숨을 쉬게 하는 쉼표로 머물러 있다. 미디어아티스트들이 만들어가는 현대의 일상에서 서울역사가 지니고 있는 시간 속의 한 공간에 걸음을 멈추고 그 시간을 함께 한다.
 
떠남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서울역이 탄생하던 시점에서 1, 2등 대합실에 마련되어 있던 부인대합실이 3등 대합실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서울이 지니고 있는 일정한 시간대의 모습이다. 오래전 그 시간이 지니고 있던 신분의 세상에서 차별화되던 남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음도 우리의 역사에서 중심의 역할을 하는 서울역이 지니고 있던 새로움의 발견이었다.
 
미디어가 함께 하는 현대라는 시간에 내가 머물러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신분의 구별이 확실하던 그 시간대에 3등 대합실에 머물러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오늘이라는 시간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던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