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과 닥터의 만남? 절대 그럴일 없죠"

영국 런던 베이커가 221B번지 거주, 별명 '고성능 소시오패스(soci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 친구도 없고 잘난 척에 안하무인이나, 사람의 오장육부까지 꿰뚫는 시퍼런 눈을 마주하면 헤어나기 쉽지 않다. 셜록 홈스다. 드라마 '셜록'은 2010년 BBC에서 처음 방송된 이래 각국의 숱한 '셜로키언'(Sherlockian·열혈 팬)을 만들며 시즌 4 제작까지 거의 확정됐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탐정 셜록을 21세기로 불러낸 '셜록'의 작가 스티븐 모팻(53)을 서울 동대문 DDP에서 만났다. 22일, 코난 도일의 생일이었다.

전 세계적인 인기작이지만 '셜록'은 지극히 영국적인 드라마다. 원작부터 영국 소설이고, 배경과 주연, 말투까지 모두 영국산(産)이다. 모팻은 "드라마든 뭐든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기보다, 자국인을 먼저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셜록 시즌 3 첫 방송을 본 영국인은 1270만 명에 달한다. "외국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나라만의 고유한 색깔을 보려 하기 때문에 억지로 드라마를 표준화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미국 드라마 '24'를 즐겨 보는데 이번 시즌부턴 배경이 런던이었어요. 배경이 런던인 미국 드라마라니, 별로던데요."

모팻은 인터뷰 내내 셜록의 광팬임을 자처했다. "어릴 적 영웅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옆에 있던 아내 수 버추(54)가 쿡 찔렀다. "맨날 말만 하길래, 그럼 직접 만들어보자고 했죠." 남편은 대본을 쓰고 아내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침대에서 10분이면 회의가 끝나니깐 작업이 빠르죠. 셜록과 왓슨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은 편해요. 애 키우는 게 힘들지." 두 사람이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드라마는 범죄 수사보다 모험에 초점을 맞춘다. 그 때문에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다. 삐딱한 천재 셜록(베네딕트 컴버배치·38·사진)과 그의 유일한 친구 왓슨(마틴 프리먼·43)의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의 우정)'나 셜록의 부모 역할에 컴버배치의 실제 부모를 캐스팅하는 등의 파격이 그 예다. "드라마와 코미디가 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매 장면이 대단한 액션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면, 웃기는 게 당연히 좋지요."

모팻은 세계 최장수 드라마 '닥터 후'의 수석 작가이기도 하다. 1963년부터 제작된 SF드라마로 외계 행성에서 온 900살 먹은 외계인 '닥터'가 공중전화 부스 모양의 타임머신 '타디스'를 타고 시공을 넘나드는 모험담이다. 모팻이 "완벽하게 진화한 텔레비전의 포식자"라 부른 그 드라마다. 유년 시절 '닥터'가 외계인과 싸우는 스케일을 보며 자란 모팻에게 2009년 수석 작가 제의가 들어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틴틴의 모험' 작업을 위해 미국 할리우드에 있던 때였다. 당장 영국으로 날아갔다.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그는 올 8월쯤 방송할 시즌 8도 맡았다.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드라마 두 편은 거의 형제다. '셜록' 앤더슨 형사 사무실 벽엔 '타디스' 사진이 붙어있고, '셜록' 시즌 3에서 셜록의 죽음을 위장하기 위한 작전명 '라자루스'는 셜록의 형으로 출연 중인 마크 개티스(48)가 '닥터 후'에 출연했을 당시의 배역이다. 광팬들은 닥터 후와 셜록을 교묘히 합친 동영상 '후록(Wholock)'을 만들기도 했다. 모팻은 "영상을 봤다. 그들의 창의적인 반응을 볼 때마다 놀랍다. 다만, 셜록과 닥터가 실제로 만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1989년 시트콤 '프레스 갱' 이후 25년째 작가로 살아온 그는 22일 한국방송작가협회와 SBS문화재단 초청으로 '성공하는 글쓰기'에 대한 강연도 진행했다. 그는 '성공적(successful)'이란 단어를 발음하며 미간을 구겼다. "성공을 확신하는 것만큼 교만한 태도는 없어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그게 재밌을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작가의 존재 이유를 "시청자가 계속 보고 싶게끔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한 문장을 쓰고 그다음 문장을 잇는 거죠. 애태우고 또 웃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