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5.28 10:33

Essay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내 몸 중에서 가장 먼저 ‘나 늙었소’ 하고 알려준 것이 바로 눈이다. 돋보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꽤 오래전 일이다. 돋보기가 없으면 글씨가 뭉쳐 보이는 탓에 블로그의 글을 스마트폰으로 읽고서도 댓글은 반드시 PC를 이용해 써야 한다. 내 스스로가 불편해서 내 블로그의 글씨도 크게 키우고 글의 행도 보기 편하게 널찍한 간격을 두곤 했었다.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돋보기를 쓰고도 눈이 자꾸 불편하니 괜히 속이 상했다. 하긴 돋보기를 끼고도 바늘귀를 꿰는 것이 어려워서 바느질이며 뜨개질은 생각도 못한 것도 꽤 오래전부터다.

재작년에는 오른쪽 눈에서 날파리 같은 게 한 마리 휙 날곤 했다. 건강하시던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과 초자체 절제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눈앞에 파리가 있다면서 손으로 파리를 잡는 시늉을 하시는 증상을 보였다. 나에게 어머니와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니 얼마나 걱정 되던지…. 어머니는 그냥 두면 실명한다고 해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나도 수술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병원 예약을 잡아놓고도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몹시 걱정한 그 증상은 바로 비문증이라고 했다. 눈앞에 날파리가 한 마리 날아다닌다고 하자 노화 증상이라며 여러 마리가 날아다니지 않으면 괜찮단다. 시야 검사며 녹내장 검사도 이상 없고 전체적으로 괜찮지만 조심하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화장실 쪽에서 누가 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데 싶어 오싹한 마음에 돌아보니 눈이 부리는 조화였다. 엎드리거나 책을 읽으면 왼쪽 눈 아래쪽에 반달 모양의 동그란 반원이 보였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데 반달 모양이 아주 선명했다.

평소 다니는 병원에 예약하려니 나를 봐주는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단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일주일 만에 진료를 받았다. 비문증인데 망막검사를 해야 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안약을 넣으면 시야가 흐려 보인다더니 점점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앉아서, 또 누워서 한 검사결과는 치료를 받을 만큼은 아니라는 것. 알레르기에 의한 결막염약만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보다 좋은 결과라서 다행이긴 했다.

평소 눈의 소중함을 알긴 했지만, 종일 시야가 흐린 상태라서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문자 메시지에 답하기도 어려워서 정말 답답했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안십중구(眼十中九), 즉 ‘몸이 열이면 눈은 아홉에 해당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들 여기저기가 고장 나서 병원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60년을 써왔으니 탈이 날 만도 하지. 눈 수술을 받고 나서 ‘사람 늙어서 좋은 것 없더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70년 넘도록 몸을 썼는데 그만하길 다행으로 여기시라고 건방지게 대꾸하던 젊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칠순을 넘기고서도 이른 새벽에 등산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장 노릇을 할 만큼 기운이 넘치는 분이었다. 친구들이 골골거린다면서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밥만 먹으면 약봉지를 꺼내더라’고 하셨다. 바늘귀만 꿰어드리면 아이들 옷이며 베개며 이불 홑청을 척척 꿰맬 만큼 정정하셨다. 그랬으니 눈 수술 받았다고 늙어서 좋은 것 없다는 말씀이 그저 엄살로 보였고,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젊었다. 막상 내가 눈의 불편을 느끼다 보니 그런 어머니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내 모지락스러움이 마음에 걸린다. ‘그땐 몰라서 그랬어요. 어머니 죄송했어요.’ 용서를 빌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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