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발견한 이들이야말로 성공한 중년이라 할 만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는 남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광우 링크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이벤트·프로모션 전문 대행사 링크커뮤니케이션즈를 이끌고 있는 이광우(55) 대표이사.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oksenior.blog.me)에는 여행·스포츠·방송·영화·이벤트 등 소소한 콘텐츠가 즐비하다. 그만큼 관심사가 다양하다는 얘기.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자체보다 이 대표이사가 다양한 관심사를 즐기는 방식이다.
“내 삶의 가치는 가족에 있다. 사소한 무엇이든 가족과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대로 집안의 화목이 없다면 바깥에서의 어떤 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이사의 가족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슈나우저 강아지 한 마리로 비교적 단출한 편. 아내는 한국무용 전공의 대학 외래교수이고, 아들은 영어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이 평범하지만 단란한 가족은 영화감상이나 여행, 수영 같은 공통의 취미로 오랫동안 똘똘 뭉쳐왔다.
“도심에서 생활할수록 가족 간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공통의 취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는 이 대표이사는 한 주에 한 번은 가족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한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해리포터’나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요새는 여자친구가 생겨 바쁜 아들 덕택에 아내와 둘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지난주에는 ‘역린’을 봤다.”
시간이 날 때면 가족여행을 떠난다. 일년에 4차례 정도는 국내여행, 몇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에 나선다. “가장 즐겨 향하는 곳은 인천 대이작도다. 여름이면 한 해에도 몇 번씩 찾곤 하는데, 지금까지 한 서른 번은 갔을 거다. 아들은 중1 때부터 다닌 그곳을 ‘우리 집 별장 같다’고 한다. 가족 모두 물과 수영을 좋아하니 제격이다. 낚시나 보트, 조개 캐기 등 체험 거리도 많아 재미있거니와 자연 그대로의 환경 때문에 힐링이 많이 된다.”
뿐만 아니다. 이 대표이사는 토요일이면 아내를 위해 요리와 청소를 서슴지 않는 다정다감한 남편이다. 회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회칼로 직접 회도 뜬다는 그. 또, 아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 센스 만점 아빠다. 아들이 4살 때부터 ‘아빠일기’를 쓰고 있다니. “어릴 때 같이 놀러 다니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녀석이 대학 들어가면서는 쓸 말이 없어지더라(웃음).” 한 가지 더. 그는 관음죽도 기른다. 아들이 태어난 해, 즉 21년 전 심은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파 준비한 것이라고.
가족에 대한 그의 애정이 실로 대단하다 싶지만, 그는 “어려운 게 아니다”며 손사래를 친다. 연습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얘기.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앞으로 함께하는 시간은 줄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연습이 돼 있으니 걱정 않는다. 변함없이 오래도록 함께 좋아하는 것들을 나눌 것이다.”
한편, 그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취미만큼 개인적인 취미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축구와 함께한다. 회사 오너답게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그의 축구 경력은 자그마치 42년. 지금은 지역의 조기축구회장직까지 맡고 있다고.
일을 할 때도, 가족과 함께할 때도, 또 혼자만의 취미에 몰두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 대표이사는 최근 나름대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행복이란 뭘까. 행복에도 수치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감사하는 마음이 쌓이면 그게 행복이더라. 감사의 마음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차이일 뿐.” 매일 아침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로 시작한다는 이 대표이사. 가족과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다.
심현용 도전365 대표
인터넷·모바일 방송 제작 업체 도전365의 심현용(63) 대표는 국내 1세대 개인 인터넷 방송자키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세월호 사고 후의 상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동시접속 7만 명, 일주일 누계 접속 2000만 명의 기록을 세웠다. 심 대표는 “편파보도가 활개치는 속에서 24시간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런 심 대표의 인생 최고 가치는 바로 방송이다. 말하자면 일에 미친 사나이. “방송은 내 인생에서 거의 100%를 차지한다. 14년째 방송을 해왔고, 앞으로 죽는 순간까지 계속할 것이다”고 말하는 심 대표가 처음 방송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게 된 계기는 지난 2000년, 개인 방송 솔루션이 대중화되면서부터다. 채팅사이트 ‘세이클럽’에서의 라디오 방송이 그 시작이었다. “각 채팅방에서 음악방송을 하더라. 근데 가만히 보니 대부분 20~30대를 위한 방송이지, 40~50대를 위한 방송은 없는 거다.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흔아홉의 나이, 그간 해오던 일과는 전혀 무관한 방송이라는 일. 그러나 그 무렵 그에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긍지가 있었다. 6개월간 알음알음으로 방송 기초를 배워 40~50대를 위한 음악방송을 시작한 심 대표. 재미로 한 것이기에 1~2년 하다 끝낼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2002년 무선인터넷이 보급되자 심 대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세상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소리만 전하는 라디오에서 벗어나 영상으로, 본격적인 방송자키 생활에 뛰어든 것이다. 캠핑카를 사서 전국 곳곳을 누볐다.
2003년 대구에서 ‘슈퍼마켓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것을 시작으로 평창송어축제, 봉평메밀꽃축제 등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했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나 문화·예술, 축제 등에 특히 관심을 두고 있다는 그는 현재 실시간 중계방송 사이트 ‘유스트림’의 방송자키 유스트리머로 방송생활의 전성기를 맞은 상태. “기존에는 일방적으로 방송을 보는 입장, 소비만 하는 입장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직접 생산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나만의 독자적인 브랜드가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
지난 14년간의 방송이력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바로 ‘동창회 생방송’. 그는 7년 전부터 자신의 동창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봄, 가을이면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 전국 각지, 심지어 해외로 흩어져 있는 50년 지기들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아 친구들이 늘 아쉬워했는데, 내 방송을 통해 회한을 푼 것이다. 방송을 보고 반가움에 사무친 친구들은 서로 울고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길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방송 시작하고 5~6년간은 ‘별난 놈’ 소리 많이 들었다. ‘돈도 안 되는데 저걸 왜 해?’, ‘캠핑카나 몰고 다니면서 뭐하는 짓이야?’ 같은 얘기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부러워한다고. 그의 열정이 마침내 빛을 발한 것일까. “부족하다는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다. 미래가 불안했기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뭔가를 찾을 수 있었다. 상황이 넉넉했다면? 안 했겠지(웃음). 숱하게 많은 이들이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행하는 것은 결국 소수다. 절박감을 가진 소수 말이다.”
요새는 부쩍 동년배들과의 대화가 쉽지 않다는 심 대표. 그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친구들 만나면 늘 손주 얘기, 부동산 얘기밖에 안 한다. 어떤 일이 가치 있는지, 즐거운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나이 들었다고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서 새로운 창조적 사고를 배워야 한다. 환경의 틀을 깨는 게 쉽진 않겠지만 늘 노력해야만 한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일간지 부동산 전문기자(전원주택 담당)로 15년을 재직하며 <전원주택, 나도 주인이 될 수 있다>, <전원주택 뚝딱 짓기>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지난 2000년 퇴직을 하고 나서부터는 전원주택단지 개발 업체 드림사이트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는 이광훈(57) 대표. “인생의 3분의 1을 전원주택과 함께했다”는 그는, 말하자면 전원생활 예찬론자다.
그는 먼저 처칠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다. 집이란 건 그저 단순한 집이 아니다. 전원주택에 사는 것은 단순히 공기 좋은 곳에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시에서 전원으로 향하는 것은 인생의 프레임을 바꾼다는 의미다.” 은퇴 후에는 새로운 삶을 위한 설계가 필요하고, 여기에 전원생활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아직 낯선 개념인 전원주택을 취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던 1995년, 당시 기사를 묶어 출간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된 이 대표는 사람들로부터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분위기에 떠밀리듯(?)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게 바로 그 이듬해. 꼬불꼬불한 국도를 따라 양평에서 서소문까지 출퇴근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환경이 만족스러웠다.
“전원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가족 간의 스킨십이 많아졌다. 잡초 뽑기나 쓰레기 버리기 등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으니까. 이제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함께 하는 데 20년간 숙달이 됐다.” 8년 전 이천으로 이주한 그는 “내 집은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게 꾸민 집은 아니다. 시골은 시골다워야 한다는 생각이라, 투박하게 텃밭에 상추나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기르며 산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 대표가 지난 20여 년간의 전원생활을 통해 얻은 최고의 가치는 바로 ‘자아 찾기’다. 진짜 나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됐다는 것. “우리는 도시에서 형성된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연연한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시기가 오면, 그런 것을 떨치고 진정한 자아찾기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의 설명대로라면,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500개의 전화번호가 100개로 줄어드는 데는 은퇴 후 1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 5년이 지나면? 남은 인맥은 10~20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도심이라는 틀 안에 갇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깨질 관계망, 그 허상에 쩔쩔 매며 산다. 이 대표는 누차 강조한다. 인생을 ‘포맷’하라고.
“기존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같은 프레임 안에서 나를 바꾸기란 아무래도 힘든 법이다. 30년 넘게 살아온 관성이 있으니 삶이 쉽게 바뀌겠나. 그러니 새로운 환경으로 자신을 던져보라. 자신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쩌면 진짜 자신의 능력, 가치가 드러날지 모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자아찾기의 골자다.
이 대표는 전원생활을 통해 그 같은 가치를 공고히 했다고 믿는다. “나이 예순쯤 되고 보니 남들 사는 게 보인다. ‘저 나이에도 왜 저렇게 집착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 보면 그저 안타깝다.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허상에 매달린 탓일게다. 아마도 나는 복잡한 사회에서 한발 떨어져 살아온 덕분에 지금의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