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김태웅 대표의 SNS 상태메시지 칸에는 ‘위기는 기회의 시작’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흔한 말은 그러나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충분히 짐작케 했다. 10대 시절 구두닦이, 껌팔이 생활을 전전하다 40대 초반 출판사 대표로 극적 변신에 성공한 남자. 그런 다음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독하게 공부한 남자. 전교 1등을 거머쥐더니 이후 보란듯 명문대 졸업장을 따낸 남자. 그는 이 모든 성공을 이끈 건 다름 아닌 ‘태도’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세요?” 사람들이 김태웅(58) 대표에게 가장 많이 한다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김 대표는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한들, 성공한 출판사 대표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무렵 학력이 고교 중퇴라는 것을 알리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가 어디 쉬웠을까. “그동안 남들은 내가 당연히 대학을 나온 줄 알았지. 외국어 서적 전문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으니 더욱이…. 커밍아웃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주변에서 많이 놀라더라.”
고교 중퇴생이 출판사 사장이 되기까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열여덟 소년. 그는 억울한 사건에 연루되어 고교 중퇴의 고배를 마시기 전까지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았다. 지하철 껌팔이, 구두닦이는 물론이고 학교 앞에서 토스트를 구워 팔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낙천적인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지금은 내 외모가 예뻐 보일지 모르지만(웃음), 예전엔 싸움꾼이었다. 건강했고, 힘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게다가 친구도 많았으니 별로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상황은 달려졌다. 중졸 학력으로는 취직조차 쉽지 않았으니. “결국 자영업으로 자수성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조그만 장사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돈은 무슨 일을 해서든 벌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껌팔이나 구두닦이는 나의 바람직한 직업상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못 배워서인지, 출판사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는 김 대표는 한 대형 출판사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둥지를 틀게 된다. 그때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다. 웬만한 직원들보다 나이가 많은 ‘알바생’이었던 그는 매일 4만 부의 책이 들고 나는 그곳에서 정신없이 책을 포장하고, 날랐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젊은 알바생들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으니까. 열심히 하면 언젠가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그 자체를 일이 아닌 놀이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런 와중에도 책을 무척 좋아한 김 대표에게 그곳은 순간순간 ‘진짜 놀이터’가 돼주기도 했다. 늦도록 창고에서 책을 읽다 창고문이 잠기는 바람에 밤새 갇혀 있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연말 회식 때였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이례적으로 알바생인 내게도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자존심이 있어 ‘정직원이 되고 싶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 말을 돌려 ‘주말 당직을 서고 싶다’고 했다. 내 딴엔 용기를 내 어렵사리 한 말이었는데, 당시 상관이 ‘뭐라고? 다시 말해봐’ 하더라. 그때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그간 자신감 하나로 버티던 내가 그 순간 모든 자신감을 다 잃었다. 그게 너무 창피했다.” 다시 ‘주말 당직을 서고 싶다’고 말했을 땐 눈물이 다 났다는 그다. 고교 졸업장이 없는 한을 그때 새삼 절감했다고. 그러나 이 순간은 그에게 확실한 기회가 됐다. 아르바이트 1년여 만에 정직원으로 승격한 것.
“이 회사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 견뎌보자. 뿌리부터 다 배워 나중에 기필코 출판사 사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곳에서 7년간 일하며 도서 제작 및 관리, 영업 등을 익힌 김 대표. 일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집념은 빛을 발했다. “영업 당시 내 별명이 ‘흰 장갑’이었다. 하얀 장갑을 끼고 서점에 있는 책을 다 닦는다고. ‘하루 이틀 저러다 말겠지’ 했지만, 계속 꾸준한 모습을 보이자 서점 사장님들이 나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 파트 매출은 자연히 높아졌고.”
7년 후 독립한 김 대표는 작은 외국어 서적 전문 출판사를 시작으로 동양북스까지 인수하게 된다.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 그는 그토록 바라던 ‘사장’이 됐고, 지난 19년 동안 동양북스는 그의 지휘 아래 차근히 성장해왔다.
인생 최고의 성취는 바로 ‘자신감’
여기까지 보자면 김 대표의 인생은 극적인 성공이었고, 또 이른 성취였다. 그 자리 그대로 안착해도 좋았다. 그러나 김 대표는 스스로에 대한 자극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교로 돌아간 그는 총기 넘치는 10대 학생들과 겨뤄 전교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성균관대 경영학부에 입학하면서는 “과에서 3등을 두 번이나 했다(웃음)”고.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나이 먹었다고 해서 못할 건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흔한 말, 그 말이 맞다. 용기와 집념만 있다면 말이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 시작한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아들보다 어린 학생들과 교감하기가 결코 쉬웠을 리 없다. “젊은 친구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메우기 위해 그간의 나 자신을 다 버려야 했다. MT도 안 빼놓고 따라 다녔다. 처음에는 불편해하더니 나중에는 의식도 못할 만큼 동화됐다. 소통이 되더라. 요새도 아들보다 어린 녀석들이 수시로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내게 ‘형’, ‘형’ 하니 우리 직원들이 놀랄 때가 많다(웃음).”
이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 후 그는 본의 아닌 ‘유명세’를 얻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7년여 전부터는 학교, 기업, 군대, 재활원 등지에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극한 상황이 오면 우리는 대체로 멈춰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 과정을 넘어섰을 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새벽의 미명이 가장 어둡다’는 말도 있지 않나. 어둠을 거쳐야 새벽을 맞을 수 있다. 지레 짐작으로 포기한다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정과 집념, 행동과 실천. 이 같은 태도가 운명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런 김 대표는 말한다. 지난 삶을 되짚어봤을 때, 인생 최고의 성취는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감을 회복한 일이라고. “성취는 결코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더라. 일과 공부를 하며 최선을 다했을 때 그 결과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 만약 내게 회사나 돈이 없다면? 그렇다한들 나는 자신감 하나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역경을 통해 내가 얻은 건 바로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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