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서 타임머신 타고 왔다, 노래하는 '가시내들'

'바버렛츠'라는 걸그룹이 데뷔 앨범을 낼 거라는 말을 여러 명에게서 들어왔다. "정말 끝내준다"는 말이 후렴구처럼 따라붙었다. 한국에서 걸그룹이 끝내주는 건 성형 미모와 굶어 만든 몸매뿐인데 무슨 소리인가 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바버렛츠의 'Be My Baby'를 우연히 봤다. 정말 끝내줬다.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노래였다. 1960년대 미국 걸그룹 로네츠가 부른 원곡보다도 훨씬 좋았다. 안신애(28) 김은혜(27) 박소희(23)로 이뤄진 바버렛츠(Barberettes)가 첫 앨범을 냈다. 그동안 각자 보컬 트레이너 또는 코러스 멤버로 활동하다가 팀으로 뭉쳤다.

"바버샵 스타일을 하려고 원래 4명이 시작했는데 3명이 됐어요. 그래서 이름도 바버렛츠고요." '바버샵(barbershop) 스타일'이란 악보 전체가 4부 화음으로 이뤄진 아카펠라를 말한다. 27일 이들이 앨범 발매 잔치를 연 서울 종로 한 카페에서 멤버들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옛날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배우들 재능이 진짜 재능이잖아요. 편집이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안 좋으니까요. 우리도 진짜 재능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 음악을 하게 됐어요." 리더 안신애의 말이다.

'Be My Baby'는 동영상 경연 사이트 'vube.com'에서 조회 수 500만을 넘겼다. 이미 홍대와 이태원 클럽가에서는 유명한 팀이고, 주한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꽤 알려져 있다. 멤버들이 각각 다른 파트를 불러 화음을 맞추는 1950~60년대 팝 스타일의 노래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점철된 요즘 음악들 사이에서 오히려 청량감(淸凉感)을 준 것이다.

친구들과 팬들을 초청한 이날 잔치에서 바버렛츠는 첫 곡으로 'Mr. Sandman'을 불렀다. 1950년대 미국 여성 중창단 코데츠의 노래다. 멜로디 세 개가 하나로 합쳐져 어느 것이 주(主)멜로디인지 헷갈리게 부르는 게 관건이다. 댕기머리 땋듯 단단하고 야무져야 한다. 이들은 아예 건전지로 움직이는 하모니 인간들처럼 단숨에 불렀다. 카페가 환호와 박수로 뒤덮였다.

데뷔 앨범에 실린 9곡 중 6곡은 안신애가 작곡했다. 타이틀곡 '가시내들'은 이들의 정체성이 투영된 곡. '조그만 가시내들이/ 모여서 노랠 부르면'으로 시작해 '우리는/ 노래하는 가시내들'로 끝난다. 시인 김용택이 이들의 노래를 듣고 "가시내들아"라고 부른 데서 착안해 만든 노래다. '쿠커리츄'는 안신애가 뉴질랜드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작곡가가 바버렛츠 동영상을 보고 "당신들에게 꼭 주고 싶은 노래"라며 대가 없이 준 곡이다. 이난영 곡 '봄맞이'를 리메이크해 실은 것은 이난영의 딸들인 '김 시스터즈'에 대한 헌정(獻呈)이다. 이들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김 시스터즈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인터넷에서 인기 끈 곡들은 일부러 뺐어요. 데뷔 앨범에는 우리 오리지널을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최대한 아날로그 느낌이 나도록 진짜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가시내들, 아니 바버렛츠는 앞으로 훨씬 더 유명해질 것이다. 짝퉁은 나오기 어렵다. 이만큼 노래 잘하는 여자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