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buy) 삼성'에 코스피는 웃고 코스닥은 울고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는 '삼성 증시(證市)'란 말이 나돈다. 지난달 13일부터 17일째(거래일 기준)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buy korea)' 행렬도 '삼성' 때문이고, 코스피 지수가 꾸준히 지수 2000을 넘나드는 것도 '삼성' 때문이란 얘기다. 그 핵심은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삼성 이슈 때문이다.

지난달 8일 기업 가치만 17조원이란 삼성SDS의 연내 상장 발표, 이틀 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심장 수술 소식, 이어 지난 2일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頂點)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내년 상장 발표 등이 줄줄이 이어지자, 증시에선 삼성그룹주가 연일 급등하며 자본시장 전체를 주도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삼성의 승계 작업과 지배 구조 재편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기대감을 갖고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주 중에도 급등과 급락의 희비가 엇갈리는가 하면 기술·소형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은 삼성그룹주로 빠져나간 돈 때문에 엉뚱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최근 한 달간 증시는 '바이 삼성'이 이끄는 국면"(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이란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삼성 때문에 코스피 웃고, 코스닥 울고… 여의도 증권가를 장악한 삼성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 등 17개 상장사와 삼성전자 우선주 등 7개 우선주를 포함한 24개 삼성그룹주(株)의 시가총액은 한 달 만에 24조여원(7.95)이 늘어났다. 5일 종가 기준 334조1260억원으로,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8%이다. 기술주 중심인 코스닥 전체 시총보다 2.6배나 많다. 이 기간 삼성주를 빼면 코스피 시총은 0.8%만 늘었다. 삼성 아니었다면 코스피는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모든 삼성그룹주가 오른 것도 아니다. 삼성주 중에서도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모직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많이 갖고 있거나 후계 지배구도에서 핵심 역할을 할 회사들은 두 자릿수 주가 상승을 보였다.

반면 그룹의 승계 구도와 지배 구조 개편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열사인 제일기획(-6.4%)과 삼성전기(-7.2%), 삼성테크윈(-4.6%) 등의 주가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증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잘나갈 때 '삼성엔 '전자'와 '후자'로 나뉜다'는 농담이 있었는데, 이젠 '삼성 지배 구조사(社)와 비(非)지배 구조사로 나뉘어질 판이란 말이 나돈다"고 말했다.

'삼성 증시'의 최대 피해자는 엉뚱하게 코스닥 시장이다. 지난 한 달간 코스닥 지수는 550에서 523으로 뚝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삼성 주식 쓸어 담기에 나서면서 갖고 있던 코스닥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위원은 "해외 신흥국 펀드 같은 외국계 자금의 경우 한국 투자 비중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삼성그룹주를 사들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매력을 잃은 코스닥 소형주를 내다 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형에서 대형주로… 삼성 때문에 펀드 투자도 달라진다

'삼성 증시'가 국내 펀드 투자 지형도까지 바꿔놓고 있다. 최근 2~3년간 지루한 박스권 장세에서 그나마 대세는 작지만 강한 기업에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소형·가치주 펀드'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삼성그룹주를 한데 묶어 투자하는 펀드에 시중 부동자금이 밀려들면서 소형·가치주 펀드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것이다.

5월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중·소형주 펀드에서 700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자산운용의 '삼성KODEX삼성그룹주ETF'에 207억원, 한국운용의 '한국투자KINDEX삼성그룹주SW ETF'에 171억원이 몰렸다. 동양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삼성그룹주는 지배 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꾸준히 관심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치주 펀드 시대가 가고, 삼성주 등 대형주 펀드 시대가 오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