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생활사 담은 문학관… 이곳에서 예술이 피어나길"

"문학관이라고 하지만 문학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생활이나 상업사(商業史)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기 때문에 역사학도와 경제학도도 많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아마 전국 50여개 문학관 중에서 가장 크지 않나 싶습니다."

대하소설 '객주(客主)'(전 10권)의 작가 김주영씨가 10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객주문학관' 개관식을 열었다. 소설 '객주'는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민담과 속담, 재담, 사설, 타령을 소설 속에 되살려내 토속 언어의 보고(寶庫)로도 꼽히며 지금껏 100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인은 산업화로 고향을 잃었지만 소설 '객주'를 얻었다"(평론가 황종연)는 찬사까지 받았다.

'객주문학관'은 부지 2만4700여㎡에 연면적 4600㎡인 3층짜리 건물로 지어졌다. 청송군이 폐교 건물에 75억원을 들여 완공했다. '객주'를 주제로 한 전시관을 비롯해 소설 도서관, 전시 공간, 영상 교육실, 세미나실로 꾸며졌다. 김씨가 '객주'를 쓸 때 참고한 지도와 문서, 작가의 육필 원고가 놓인 전시관에는 보부상들의 생활을 재현한 조형물과 함께 보부상들이 사용한 지게와 저울 등이 모여 있다. 펜으로 깨알 같은 글씨를 써서 채운 작가의 노트는 보는 이들을 모두 감탄케 한다. 김씨는 서울 서재에 있던 책 5000여권을 옮겨와 집필실도 꾸몄다. 한 달에 열흘이나 보름 정도 머물며 창작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김씨는 "처음부터 이 문학관을 저 혼자만의 문학관으로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또한 경북 지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싶은 주민들을 위해 문학과 미술, 사진 강좌도 여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김씨는 '객주문학관'이 세워진 곳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땐 집안이 너무 가난했기에 봄이면 진달래꽃으로 배를 채우고, 여름엔 남의 밭에서 무를 몰래 뽑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런 소년 시절이었지만 장날이 오면 아주 신났다고 한다. 낯선 외지인들이 와서 좌판을 벌이는 시끌벅적한 장터 활기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장날엔 꾀병을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고 장터로 갔어요. 학교보다 장터에서 배운 게 더 많았지요."

김씨는 장터에서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기층 민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를 절로 익혔다. "장사꾼들이 주막의 허름한 봉놋방에 앉아 들려주는 민담(民譚)엔 소설가들의 작품 못지않게 감동적이면서 반전(反轉)이 기막힌 서사가 들어 있었어요."

청송군은 '객주문학관' 옆에 '객주문학마을'도 지을 계획이다. 소설에 나오는 객줏집이나 장터를 복원해 청송의 특산물을 팔고, 숙박 시설도 지어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객주문학관' 개관을 맞아 한국과 중국 작가회의도 열렸다. 아라이(阿來) 쓰촨성(四川省) 작가협회 부주석을 비롯해 중국 문인 21명이 참가해 청송 예술회관에서 황동규 시인을 비롯한 한국 문인 27명과 함께 각자 작품을 돌려가며 낭독하고 토론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