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회 청룡봉사상 주인공들] 평생 농사로 번 돈 20년 기부 "가난해 못배우는 학생 없었으면"

"난 돈이 없어서 허리 구부러지고 손톱이 빠질 때까지 평생 농사만 지었어요. 우리 후학들은 돈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는 일 없이 국가의 기둥이 되어 달라는 뜻으로 기부하는 겁니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황규열(72)씨는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지역 장학회에 6700만원, 2012~2013년 불우이웃돕기에 쌀 200포대(20㎏짜리)와 1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남들은 있는 돈 일부를 내놓는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가진 돈을 모두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내가 못 배운 한을 이렇게라도 풀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가 일곱 살 때 손가락을 다친 어머니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어깨까지 썩어들어가는 고통 속에 숨을 거두었다. 1년 뒤 세 살배기 남동생은 굶어 죽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재혼해 새어머니가 낳은 여동생도 두 살 때 아사(餓死)했다. 6·25전쟁이 터져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일어난 비극이다. 황씨는 남의 집 부엌에 몰래 들어가 밥을 훔쳐 먹으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 맺힌 한 때문에 '쌀 한 항아리 옆에 놓고 먹는 것'이 황씨의 평생소원이 됐다.

황씨는 중학교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했다. 오른손 엄지와 약지 손톱이 빠질 정도로 독하게 일한 덕분에 1970년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물려준 논 다섯 마지기 반은 지금 열일곱 마지기가 됐다. 악착같이 번 돈으로 1남 3녀를 키워냈다.

황씨는 1991년 9월 중학교 동창이 장학회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쌀 10가마(당시 50만원)를 처음으로 기부했다. 그는 "그때 내 형편에는 쌀 10가마도 엄청난 결단이었지만, 나처럼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후 150만원을 조금씩 나눠 기부한 그는 2011년 1월과 3월 백암장학회와 용인시민장학회에 5000만원, 1500만원씩을 냈다. 농사짓고 쌀을 팔아 30여년간 차곡차곡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칠순 잔치를 하려고 모은 돈까지 탈탈 털었다. 황씨는 "칠순 잔치 해봐야 식당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고 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20㎏짜리 쌀 100포대씩을 면사무소에 불우이웃을 도와달라며 기부했다. 농사지어 수확한 쌀 3분의 1이다.

황씨는 50년간 곁에서 함께 고생한 아내(71)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종종 "우리도 형편이 힘드니 기부를 그만 좀 하라"고 타박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황씨는 "우리 부부 병원 가고 장례 치를 때 쓰려고 땅은 남겨놨으니까 걱정 말라"며 웃어넘긴다. 황씨는 "이번에 타는 상금도 좋은 데 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