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물물교환'도 전시물입니다

창고형 건물에 1번부터 14번까지 번호가 붙은 작은 방 14개가 따닥따닥 붙어 있다. 1번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에 앉은 남자가 과자를 보여주며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당신은 이 과자하고 뭘 바꿀래요? 어깨에 멘 카메라 어때요?" 카메라를 달라니. 얼떨결에 선글라스를 대신 내밀었다. "자, 그럼 이 선글라스하고 소지품 바꾸실 분?" 9.9㎡(3평) 정도 되는 작은 방. 10여명의 관객이 소지품 교환을 이어갔다. 놀이가 아니다. 슬로바키아 작가 로만 온닥의 관객 참여형 '라이브 아트(Live art·실연 예술)'다. 제목 '스와프(swap·교환)'. 이렇게 14개의 방마다 오노 요코, 데이미언 허스트 등 유명 작가들이 만든 행위 예술이 펼쳐졌다.

지난 14일 스위스 바젤 메세 플라츠. 공식 개막에 앞서 '2014 아트 바젤'(19~22일)의 첫 포문을 연 특별전 '포틴 룸스(14 Rooms)'의 풍경이다. 이 전시는 2011년 맨체스터에서 열렸던 '일레븐 룸스(11 Rooms)'를 변형·확장한 이벤트. 세계 최고의 컬렉터와 갤러리가 총결집해 철저한 자본 논리에 따라 예술을 거래하는 최대 미술 시장인 '아트 바젤'이 올해는 세일즈를 넘어 새로운 예술 장르를 포용하는 데까지 외연을 한층 확장했다.

◇미술 시장의 확장을 실험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언리미티드(Unlimited)'의 급성장이다. 언리미티드는 대형 설치·조각·비디오 작품 등을 전시하는 섹션이다. 하얀 사각 부스에 작품을 걸어놓는 전형적인 아트 페어의 형식을 탈피하기 위해 2000년 전시장 한 귀퉁이에서 조그맣게 시작했다. 14년 만인 올해는 최근 증축한 '1 전시장' 전체를 쓸 정도로 커졌다. 한국 작가 양혜규를 비롯 주세페 페노네, 칼 안드레, 앤서니 카로 등 주요 작가의 대형 작품 78점이 전시됐다.

현장에서 만난 마크 스피겔러 아트 바젤 디렉터(총책임자)는 "언리미티드를 시작할 때 미술관에서 해야 할 전시를 왜 아트 페어장에서 하느냐고 했다. 그런데 개인 미술관을 여는 컬렉터들이 늘어나면서 대형 설치물 수요가 많아졌고, 전시 규모도 커졌다"고 했다. 그는 '14 rooms'도 같은 연장선에서 "아트 바젤의 고객은 컬렉터만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게 아니라 새 예술을 일반 관객에게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고 했다. 자스밀 레이먼드 뉴욕 디아 아트(Dia Art) 재단 큐레이터는 "관객 참여가 현대 예술의 중요한 흐름이 되면서 미술관이 행위 예술 소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과물로서 사진, 영상을 사기도 한다. 아트 바젤이 이런 추세를 똑똑하게 짚었다"고 했다. 예술의 틈새시장을 미리 선점하려는 포석이란 얘기다.

◇베르사유에서 이어진 '이우환 효과'

언리미티드가 차지하는 공간이 커지면서 메인 부스는 작아졌다. 올해는 34개국 285개 화랑이 참여했다. 지난해 39개국 304개 화랑에서 조금 줄었다. 한국은 국제갤러리와 PKM, 두 곳만 참여했다. VIP 프리뷰를 하루 앞둔 16일 전시장엔 이우환 작품이 눈에 띄게 많이 걸렸다. 페이스(미국), 리송·카멜 메누르(프랑스), 갤러리 앰 보훔(독일), SCAI 더 배쓰하우스(일본), 국제갤러리(한국) 등 7~8개 메이저 갤러리가 이우환 그림과 조각을 잘 보이는 입구 쪽에 배치했다. 때마침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환의 전시에 맞춰 '특수'를 기대한 것이다.

페이스는 아예 이우환과 클래스 올덴버그, 단 두 작가의 작품만을 내놨다. 조셉 벱티스타 페이스 디렉터는 "르몽드 신문에 이우환 베르사유 전시가 한바닥 난 것 봤느냐. 이우환은 이제 수퍼스타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