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 손실에… 종목형 ELS 급감 '차·화·정 열풍' 주도한 주식에 발행 쏠려 화학·정유株 타격받자 대규모 손실 부메랑 만기 오는 2011년 상품 40%가 손실구간에
"지난 13일이 3년 전 들었던 종목형 ELS 상환일이었는데, 1000만원이었던 원금이 450만원이 돼서 돌아왔습니다. 은행 이자율보다 수익률은 높고, 직접 종목에 투자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기에 들었더니만…. 정말 헉입니다 헉."
"양호하시군요. 저는 STX조선해양이 기초자산인 ELS에 들었는데, 이 종목 상장폐지되는 바람에 원금 5%도 못 건졌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종목형 ELS는 이제 절대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제 증권사들도 거의 추천 안 하더라고요. 손실 난 내 돈 어떻게 다시 불리나요…."
대형 포털사이트의 한 투자정보 카페 회원들 사이에 '종목형 ELS(주가연계증권·키워드 참조)' 성토대회가 열렸다. 최근 만기가 돌아온 상품들이 '은행 이자율의 두 배'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던 당초 기대와 달리, 수익은커녕 대규모 손실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종목형 ELS 시대는 끝났다"
특정 종목(기초자산)의 주가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인 종목형 ELS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치를 보면, 금융위기 직전 전체 ELS 발행 액수의 60%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던 종목형 ELS의 물량이 가파르게 줄어, 올 들어서는 전체의 2~3%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달에 많으면 1조원 이상씩 팔려나갔던 것이, 이제는 1000억원대에 불과하다. 투자해서 큰 손실을 봤다는 공포스러운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자, 상품을 내놔도 투자자들이 선뜻 가입하려 하지 않아 증권사에서도 새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투자증권 상품기획부 하철규 차장은 "종목형 ELS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말했다.
ELS는 주가가 하락해도 약속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면 원금도 지키고 정해진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통상 가입 후 6개월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은행 이자율보다 높은 수익을 준다. 하지만 주가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 가입 시점보다 40~60%가량 떨어져 원금 손실(녹인·knock-in) 한계선을 찍거나, 녹인 지점을 통과하고도 더 떨어지면 최악의 경우 원금 전부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상품이다.
금융위기 이후 종목형 ELS 발행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11년 상반기에 발행된 상품 중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게 많다. 2011년 3월 1조1300억원, 4월 1조1160억원 등 한 달에 1조원씩 발행 물량이 쏟아지면서, 상반기에만 5조8000억원에 달하는 종목형 ELS 상품이 팔려나갔다. 통상 ELS의 만기가 3년짜리인 경우가 많아, 이 중 상당수가 올 2분기에 속속 만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후 주가 움직임이다. 2011년 5월 2200포인트까지 치솟았던 코스피 지수는 불과 석 달 뒤인 8월 그리스 디폴트 이슈가 불거지면서 급전직하하기 시작해, 9월에 1700선까지 주저앉았다. 주로 탄탄한 대기업 대형주(株)를 기초자산으로 골라 상품을 꾸렸기에, '설마 이 주식이 반 토막 날까' 생각했던 투자자가 대부분이었다. 금융감독원은 2011년 상반기 발행된 종목형 ELS 중 약 40%인 2조3000억원가량이 6월 중순 현재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안고 있거나, 이미 손실을 보고 만기 상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1년 차화정 열풍의 덫… 40%가 손실 구간에
특히 당시 코스피 상승세를 주도했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株)' 종목 중 화·정(화학·정유) 대표 종목들이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대신증권이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0개 종목 중 2011년 상반기 고점 대비 하락 폭이 큰 20개 종목(이달 5일 기준)을 뽑아보니, 금호석유(-68.4%), 에쓰오일(-67.5%), 한화케미칼(-66.5%), 롯데케미칼(-63.2%), SK이노베이션(-60.8%), GS(-59.0%), 삼성정밀화학(-57.4%) 같은 화학·정유주가 7개나 차지했다. 이 주식들을 기초자산에 포함시킨 ELS들도 줄줄이 -50% 이상 손실을 확정 짓는 중이다. 최근 이라크 내전 사태로 이들 주가가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지금보다 적어도 70% 이상 주가가 뛰어야 겨우 고점 대비 -30% 수준까지 오르는 것이라서 사실상 원금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이 손실 한계선에 걸린 물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신증권 김영일 연구원은 "만약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9만3000원까지 하락하면, 2011년 상반기 발행한 이 종목 ELS는 모두 원금 손실을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인 ELS 투자수익률은 예금이율보다 높아
그렇다고 이제까지 ELS에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만 본 건 아니다.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낸 경우가 훨씬 많았다. 금감원이 작년에 상환된 ELS 총 41조3000억원어치 물량을 분석해보니, 연간 환산 수익률이 6.6%가 나왔다. 전체의 77%인 원금 비(非)보장형 ELS의 수익률은 평균 7.4%였고, 손실을 본 채 상환된 것은 3.8% 수준(1조2000억원)이었다. 금융투자협회 파생상품지원실 지영근 과장은 "ELS가 여타 파생상품보다 특별히 위험도가 높다고 볼 이유는 없다. 특히 지수형 ELS가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은 지난 금융 위기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y)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원금이 보장되고 정해진 수익률을 지급하지만, 주가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 폭락하면(통상 가입 시점의 40~60%)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만기는 통상 3년짜리 상품이 많고, 가입 후 3~6개월마다 주가가 정해진 수준 이상이면 미리 약정한 수익률로 조기 상환받을 수 있는 조건이 붙은 상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