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天國' 곰배령에 새 등산로 만든다는데…

18일 오후 2시쯤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탐방로. 곰배령에 다녀온 탐방객들이 삼삼오오 산에서 내려왔다. 50·60대 탐방객들은 내려오면서도 연방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점봉산은 강원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에 걸쳐 있는 해발 1424m의 남설악 대표 산이다. 우리 고유의 원시림이 잘 보전돼 있을 뿐 아니라 금강애기나리 등 희귀 식물을 포함해 자생식물 850종이 자란다. 우리나라 식물 서식종의 약 20%가 이곳에 몰려 있다. 더구나 곰배령 정상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꽃씨라도 뿌린 것처럼 온갖 야생화가 철마다 피어나 '천상의 화원(花園)'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산림청은 이곳에 하산 탐방로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9월 말까지 탐방로 하나 더 뚫어

산림청은 '점봉산 하산 탐방로 정비사업 계획'을 세우고 오는 9월 말까지 하산 등산로를 새로 만들 예정이다. 강선마을을 지나는 기존 등산로로 곰배령 정상까지 오른 다음에 능선을 따라 점봉산 생태관리센터까지 되돌아오는 5.4㎞ 길이의 등산로를 추가로 만든다는 것이다. 예산 1억8700만원을 들여 조만간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다. 함광철 북부지방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팀장은 "원래 나 있는 샛길을 이용해 양옆에 유도 밧줄을 설치하는 정도로 자연 훼손을 줄일 것"이라고 했다.

산림청은 이처럼 추가 등산로를 조성하는 이유에 대해 점봉산이 편도 등산로여서 '답압(踏壓)' 피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등산객들이 한길만 자꾸 밟으니 산림 훼손이 더 심하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또 탐방객들이 한 등산로를 다니니 쓰레기를 버리거나 마구 용변까지 해결해 일부 주민들의 불만도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추가 탐방로가 생기면 답압 피해로 인한 산림 피해도 줄이고, 지역 경제도 더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훼손 심한데…"

하지만 이미 많은 관광객이 찾으면서 곰배령이 훼손되고 있는데 추가 탐방로까지 만들면 큰일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19일 찾은 곰배령 정상엔 무리를 지어 피어난 각시붓꽃 외에도 호랑버들, 톱풀, 오리방풀, 요강나물, 애기장구채 등 각종 야생화 사이로 질경이나 토끼풀도 많이 자란 것이 눈에 띄었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특히 질경이는 저지대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에, 등산객들 발에 곰배령까지 옮겨간 것"이라며 "그만큼 훼손이 시작됐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원래 점봉산은 한정된 수의 등산객만 오를 수 있다. 예약을 통해 하루 600명만 입산증을 받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출입 통제를 할 땐 100명만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가 점차 늘어나 현재 600명까지 늘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사실상 유명무실할 때가 잦다. 점봉산 주차장 관리인은 "한창 봄꽃이 만발할 땐 고속버스가 20대까지 들어온다"고 말했다. 버스 타고 오는 사람만 1000명 가깝다는 얘기다. 일대 민박집에선 하룻밤 묵는 손님들에겐 입산증을 구해준다. 한 민박집 주인은 "우리 집에 민박만 하면 입산 통제는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추가 탐방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탐방로가 몸살을 앓는데 하나 더 생기면, 두 탐방로 사이에 낀 산림은 파괴가 더 가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인간이 자연으로 낸 길은 반드시 파멸에 이르기 때문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한길로 다녀 답압 피해가 크다면 두 길을 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상인과 등산객의 입장만 생각하는 정책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