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시선으로 본 핀란드

언젠가부터 핀란드, 좀 더 넓은 범주에서 북유럽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껌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자일리톨 껌은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는다”는 광고 문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언어였던 핀란드어 “휘바휘바(‘잘했어요’라는 뜻)”마저 유행시키며 핀란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어 2000년부터 시작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와 핀란드가 서로 1, 2위를 다투며 높은 성적을 기록하자, (우리나라야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이미 유명하니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경쟁 없는’ 핀란드식 교육법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핀란드에 대한 화제거리는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에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기 전까지만 해도 노키아는 삼성, 애플 등과 함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핀란드의 ‘국민 기업’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게임과 캐릭터로 유럽과 북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앵그리버드’가 핀란드의 벤처기업 로비오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핀란드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핀란드 경제성장의 4분의 1을 책임지고 있던 노키아가 몰락한 뒤에도 핀란드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EU 평균을 웃돌았는데, 이러한 놀라운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핀란드의 스타트업 지원책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새 인테리어, 가구 업계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과 산뜻한 컬러감,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북유럽 스타일이 대세를 이루었고, 무상 교육과 무상 복지 논쟁이 불을 지필 때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준다는 북유럽의 복지 모델이 언급되며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핀란드는 정말 복지의 천국인가? 핀란드의 교육 정책은 어떠한 잡음도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가? 한국의 공예가 나유리와 철학자이자 그의 남편인 미셸 램블린이 함께 쓴 책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를 보면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두 저자는 2007년부터 7여 년간 핀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이방인의 눈으로 핀란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핀란드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가감없이 기록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두 저자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핀란드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가 여전히 ‘UN 세계행복지수평가’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는 ‘행복한 나라’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2013년 조사 결과 핀란드는 7위로, 같은 조사에서 4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와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그들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에서 찾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월급의 3분의 1이 세금

익히 알다시피 핀란드에서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며, 급식, 학용품 등도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핀란드에서 사교육비가 지출되는 경우는 자동차운전면허학원에 다닐 때가 거의 유일하다. 의무교육만이 무료가 아니라 보육 서비스도 ‘탄생 이전’부터 시작된다. 아기를 임신하면 산모와 태아는 여성과 아이를 위한 보건소인 ‘네오볼라’에서 매달 공짜로 건강검진을 받게 되며, 아기를 위한 모든 용품이 담겨 있는 ‘엄마 상자’를 집으로 배달받게 된다. 산모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가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편이 쓸 수 있는 ‘아빠휴가’와 부부가 함께 나누어 사용하는 ‘부모휴가’까지 지급된다. 휴가 기간에도 수당이 지급되는 것은 물론이다.

복지제도만 보면 핀란드는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복지는 돈이 든다. 이들은 어디에서 재원을 마련할까? 당연히 세금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핀란드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월급의 3분의 1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떼가는 명세서를 볼 때마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세금은 수입에 따라 세금률이 차등적으로 결정되므로, 많이 벌수록 많이 내야 한다. 높은 세금률에 불만인 이들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대체로 세금을 줄이는 것에 반대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핀란드인들은 ‘세금이 곧 복지’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어, 세금을 줄이면 곧 복지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복지 제도가 결코 공짜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핀란드인들이 높은 세금을 감내하고도 별 불만을 제기하는 않는 이유는 청렴한 정부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국가 청렴도 지수에서 163개국 중 1위로 뽑힐 만큼 높은 청렴도를 자랑한다. 또한 벌금 제도에 있어서도, 수입이 많은 이에게는 더 많은 벌금을 물린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당시 노키아의 부사장이었던 안시 반요키가 과속에 대한 벌금으로 무려 한화로 880만 원에 달하는 액수를 부과받고 납부한 일이다.

심각한 왕따 문제와 높은 자살률

이번에는 교육 문제를 보자. 공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도를 보이는 핀란드 사회에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심각한 왕따 문제다. 2007년 11월 핀란드에서는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8명이 숨지고 수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2008년 7월에는 또 다른 학교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 범인이 22살 대학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왕따 문제로 인한 자살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핀란드의 해법은 주목할 만하다. 핀란드는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왕따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데 목적을 두고, 10대 학생들에 대한 보호책과 더불어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이들은 왕따 학생이 발생하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언어 문제에 있다고 보았다. 언어 능력이 뒤떨어지면 학습 능력도 떨어지지만, 친구들과의 사회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쳐 왕따를 유발한다는 논리다. 이에 네오볼라에서 정기적으로 미취학 아동의 언어능력을 점검하고,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있는 아이에게는 무료로 국립건강센터에서 언어 치료를 지원한다.

이 외에도 핀란드는 행복지수도 높지만, 자살률도 매우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한때 90년대 초반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나라가 핀란드다. 그러나 이후 핀란드의 자살률은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며 2010년에는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재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바통을 넘겨 받은 우리나라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이들의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과 공동체정신, 그리고 느린 삶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에서 답을 찾는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가 주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핀란드식 ‘슬로우 라이프’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자료제공·미래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