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25 09:53

Essay

과일나무나 넝쿨에 줄기를 잘라 붙이면 본래의 성질을 버리고 새로운 열매를 맺는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자연이 부리는 요술과도 같은 접붙이기를 보면서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잠시 돌이켜본다.

바가지를 만드는 박의 뿌리에다 먹는 수박의 줄기를 접붙이면 건강하고 튼튼한 수박 모종이 된다. 수박 속은 붉고 달지만, 박 속은 희고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둘을 접붙이면 수박이 열린다. 과연 박의 뿌리는 줏대 없이 본래 뿌리가 박인 줄도 모르고 수박 줄기에서 올려달라는 수박 원료만 올려주는가? 아니면 박의 원료만 뿌리에서 올려 주지만 수박 줄기에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듯 요술처럼 박의 재료를 변환시켜 수박을 만들어버리는가?

나는 시골 중학교를 다녀서 농업 과목을 배웠다. 여러 가지 식물의 접붙이는 방법을 배우는 접목법을 공부하고 실습을 했다. 특히 우리 집이 과수원을 해서 실습 재료는 무궁무진했다. 복숭아나무에 자두를 열리게도 했다. 고욤나무에 감도 접붙인다. 나무의 성질에 따라 접목법이 다르고 실패도 하지만 성공 시 기쁨이 있다. 나는 못해봤지만, 뿌리에는 감자가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리고, 뿌리는 무인데 잎은 배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모양이다.

접을 붙이면 뿌리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줄기의 특성이 나타난다. 과연 뿌리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가? 만약에 나무가 감사(監査) 기능이 있어서 복숭아 뿌리가 복숭아를 만들어달라고 올린 양분을 자두 만드는 데 써버려서 자두가 열리면 뿌리의 허탈함과 탄식은 오죽할까? 내 새끼 키운 줄 알았는데 남의 새끼 키운 격이다.

정보가 어두운 시골의 부모들이 서울로 유학 간 자식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준다. 달라는 대로 보낸다. 책값이 만 원이라면 만 원을 보내고 이 책은 중요하고 두꺼워서 오만 원이라면 오만 원을 보낸다. 부모 입장으로는 보낸 돈이 전부 공부와 관련된 곳에 제대로 쓰이는지 잘 모르기도 하지만 확인하기도 어렵다.

자식을 의심하면 부모가 더 괴롭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겠지! 하는 믿음 하나로 지극 정성으로 송금한다. 꼭 접붙인 나무뿌리와 같다. 줄기에서 달라는 영양분을 다 올려보낸다. 간혹 부모를 배반하는 자식이 있다. 부모가 보낸 학비를 탕진하고 엉뚱하게 깡패가 되어 있는 경우다. 뿌리는 땅속에 있어서 땅 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잘 모른다.

국민은 나무뿌리와 같이 세금이라는 돈을 줄기에서 정해주는 대로, 달라는 대로 이 땅 저 땅 뒤져서 찾아 보낸다. 단맛이 필요하다면 단맛을, 쓴맛이 필요하다면 쓴맛을 보낸다. 바위틈을 헤집고라도 찾아 보낸다. 많이 배우고 훌륭한 사람들이 위정자를 하니 오죽 잘 알아서 정치를 해주겠느냐는 믿음 하나로 어제도 보내고 오늘도 보내고 내일도 보낼 것이다.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공복을 끝까지 잘해주길 바란다. 복숭아 만들어달라고 올리는 영양분을 자두 만드는 데 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접붙이는 나무가 아니다. 국민과 약속한 공약이 자두 만드는 일이라면 뿌리에서 보내주는 원료를 정직하게 자두 만드는 데 써야 한다. 뿌리와 줄기가 한 나무 한통속이 되어 정확히 소통하며, 미래의 바른 열매를 맺기위해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


시니어리포터를 모집합니다 

시니어포털 유어스테이지(www.yourstage.com)는 50세 이상 포털 회원을 대상으로 시니어리포터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시니어리포터는 자신의 생각이나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글로 쓰고, 작성한 원고는 유어스테이지 편집부 검토를 거쳐 포털 등록 여부를 결정합니다. 글이 정식 채택되면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고, 매달 한 편의 글을 선정해 <시니어조선>에 기명으로 게재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시니어리포터는 유어스테이지 회원으로서 50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문의 02-3218-6234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