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가 만난 고수] "폭발적 성장株 시대 끝나… 친환경·에너지·소비재 분야는 유망"

다시 대형 성장주(株) 바람이다. 지난 2~3년간 중소형 가치주(고평가되지 않은 중소형주) 열풍이 불면서 시장에 가치주가 동났다. 너도나도 괜찮다고 꼽던 저평가 중소형주는 이제 너무 비싸져, 더는 '저평가' 상태가 아니란 얘기다. 미국이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축소하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한국 증시로 복귀하며 대형주를 위주로 골라 담고 있다. 자주 보았던 패턴이지만 이번엔 특히 삼성그룹 지배 구조 개편 이슈가 맞물려 대기업 대표 종목에 대한 편애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투자 내비게이터' 같은 전통의 대형주 펀드가 각 증권사 '추천 펀드'로 속속 복귀하는 중이다.

대형주 장세가 찾아오는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선 KB자산운용 송성엽 주식운용본부장(CIO·최고투자책임자)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6년 말 KB자산운용 CIO로 영입돼 'KB그로스(Growth·성장)포커스 펀드' 등 대표 상품을 재정비했고 업계 꼴찌 수준이었던 KB자산운용의 수익률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증권가에서 송 본부장은 '대기업 분석 전문가'로 꼽힌다. 대기업 계열 대형주들을 분석해 그중 40~50개의 우량주만 골라 담는 펀드를 20여년간 운영해왔다. 특히 기업 지배 구조와 사업 구조 개편 분야에 밝다는 평가다.

24일 만난 송 본부장은 "개인도 펀드매니저도, 결국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을 고를 줄 알아야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요즘 집중하는 것은 친환경·에너지 분야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과 소비 수준이 높아질수록 수혜를 입는 소비재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가치주가 지고 다시 대형 성장주가 뜨는 국면을 맞았다.

"시가총액 30%에 달하는 삼성그룹의 구조 개편이 임박하면서 이런 분위기로 확 돌아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 성장주는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대형 가치주'를 좋아한다. 중소형주 중에는 지나치게 대주주 의존적인 경영을 많이 하거나 고배당 정책 등 주주 환원 정책이 미흡한 경우가 있다. 나는 대형주를 일단 추린 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주식을 다시 골라낸다."

―성장주가 이제 없다는 건 무슨 얘긴가.

"2000년대 중반부터 금융 위기 직전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화학·조선·철강 같은 주식은 이제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 성장세도 둔화하면서 중국 고(高)성장에 기댄 주식도 이제 나오기 어려워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 경쟁력을 가진 산업도 없어졌다. 조선 업종은 중국에 시장점유율 1위를 뺏겼고, 미국과 한국의 에너지 기업 마진(이익률)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굳이 (성장성이 높은 분야를) 꼽는다면 반도체, 휴대폰, 배터리 정도인데 독립된 회사보다는 큰 기업 사업부 형태인 경우가 많아서 성장성에 제약이 있다."

―현재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수탁고에 특히 많이 투자된 기업·종목이 있나.

"비즈니스 모델이 괜찮은데 주가는 싼 LG그룹주를 좋아한다. 화학, 태양광·배터리 같은 친환경 에너지 등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을 많이 갖고 있다. 같은 기준에서 SK그룹도 괜찮아 보인다. 삼성그룹은 지배 구조 개편이 임박해 주가 상승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산업재 중심인 두산그룹은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아 보이고 소비재도 많이 팔아버렸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모델이 부진한 점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클린디젤 등에 더 투자해야 한다."

―삼성그룹주 중엔 특히 어떤 종목에 관심을 둬야 할까?

"오너(사주)가 최종적으로 갖고 가려는 기업, 오너 지분이 많은 기업은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후계 이슈가 있는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의 기준이 뭐고, 그런 기업은 어떻게 골라내는가.

"현재 탄탄한 현금 흐름을 창출해낼 만한 비즈니스를 갖추고 있으면서 미래에 유망한 사업 분야에도 계속 투자하는 형태, 이게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바탕에서 해당 기업이 일반 주주에게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느냐를 중요한 선택 잣대로 삼는다. 모든 돈은 오너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곳도 있을 것이고 적정 수준으로 환원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적당한 주주 환원이 이뤄져야 시장을 이길 수(코스피 등 벤치마크 수익률을 넘을 수) 있다. 요즘은 열심히 기업 탐방을 다니는 게 능사가 아니다. 탐방을 가면 이번 분기나 다음 분기 실적을 꼼꼼히 계산해낼 수는 있겠지만 그 회사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재무 정보를 가장 빨리 얻지 않고서야 수익률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 한 분기 실적이 나빠진다고 팔아버리는 식의 투자는 지양한다. 비즈니스 모델만 좋으면 한두 분기의 부진은 큰일이 아니다."

―경기(景氣)를 가늠할 때 중요하게 보는 지표가 따로 있나.

"주가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 미국·중국·독일의 경기 선행 지수를 반드시 살핀다. 내수 경기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백화점에 간다. 백화점 정상 매장은 썰렁한데 특별 상설 할인 매장에만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 있진 않은지, 또 명품 패션 매장이 있는 '상층부'는 썰렁한데 지하 식품관만 바글바글하진 않은지 체크한다. 특히 백화점 와인 매장은 좋은 바로미터(지표)다. 사람들이 좀 살 만하면 와인 매장에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썰렁하다. 물론 부자들은 백화점 와인 매장 말고 전문 와인 가게에 꾸준히 간다."

―주식 투자 전문가로서 개인 투자자에게 조언해준다면.

"급등하는 주식은 절대로 따라 사지 마라. 주가가 급격히 내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숨겨 왔던 악재를 한순간에 공개할 때가 전형적인 예다. 하지만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건 대부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작전에 휘말려 처참하게 쓴맛을 볼 수 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꾸준히 올라가거나, 현금 흐름이 개선되는 기업에 장기 투자하라. 이런 주식은 지금 당장 주가가 비싸도 사두면 나중에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