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넘어 코팅 산업으로… 市場 무궁무진"

"건설 경기가 안 좋아 페인트 시장이 어렵지 않으냐는 건 옛날 얘기입니다. 페인트만큼 전(全) 산업에 고루 걸친 분야가 없어요."

국내 건축용 페인트 시장 점유율 1위(32%)인 삼화페인트의 김장연(金丈淵·57) 사장(대표이사)은 뜻밖에도 "우리는 건설 경기 불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화페인트는 올 1분기 매출 1116억원에 영업이익 67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기준으로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이다.

공동 창업주 고(故) 김복규·윤희중 회장에 이어 이들의 2세(世)인 김장연·윤석영 공동대표가 회사를 경영해왔으나, 2008년 윤 대표가 세상을 뜬 뒤로는 김 대표가 주도적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페인트 회사가 건축 말고 뭐 먹고 살 거냐'는 내부 반발이 심했어요. 그래도 과감하게 사업 조정을 단행하고 자연스럽게 위험이 분산되는 구조를 만든 효과가 최근 들어 나타나네요." 현재 삼화의 매출 비중은 공업용이 45%로 건축용(35%)을 능가한다. 공업용 페인트는 TV·자동차 등 각종 공산품에 들어가는 도료(塗料)를 말한다. 이 분야가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재무구조가 튼튼해졌고 본업이었던 건축용 페인트도 여전히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다.

삼화는 최근 충남 공주에 연산(年産) 1200kL(킬로리터) 규모의 신공장을 완공했다. 건설 경기 불황에 관련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는 와중에 총 생산량을 약 10% 늘리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삼화페인트가 발견한 새로운 캐시카우(cash cow·주요 수익원)는 '스마트폰용 도료'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3'부터 '갤럭시S5'까지 모두 삼화의 페인트가 쓰였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용 페인트가 통과해야 하는 수십 가지 시험 중 가장 까다로운 건 여성용 화장품과 무수히 접촉해도 칠이 벗겨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얼굴이 닿는 부위엔 일반 도료 가격의 5배인 프리미엄 페인트가 쓰인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올해 목표는 소비자가 페인트에 직접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인테리어 수리를 할 때 최종 견적만 받고 페인트 종류를 따지지 않습니다. 건설업자에게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하죠. 그러면 업자는 친환경적인 프리미엄 제품 대신 단가가 싼 제품을 우선으로 씁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페인트라고 하면 모두 인체에 유해하고 환경에 해로운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굳어졌습니다. 친환경적이고 좋은 제품들이 아주 많은데도 말이죠."

그는 "선진국처럼 직접 페인트칠하는 DIY(Do It Yourself)까진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특정 페인트를 골라서 업자에게 맡기는 BIY(Buy It Yourself) 문화라도 우선 정착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말 서울 대치동에 고급 갤러리처럼 꾸민 프리미엄 페인트 매장 '홈앤톤즈'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아토피 유발인자를 없앤 친환경 페인트, 바르면 칠판·화이트보드로 변하는 특수 페인트 등 다양한 페인트를 둘러보고 구매할 수 있다.

국내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 'KS마크'에만 안주해 있다가 해외 선진국에 수출하려고 보니, 인도산(産)보다 한국 페인트의 품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거예요. 자존심도 상하고 충격도 많이 받았죠." 삼화페인트는 기술연구소에 226명의 연구 인력을 뒀고, 매년 매출액의 3% 수준이던 연구개발(R&D) 비용을 올 1분기에는 4.3%로 높였다.

지난해는 불 속에서 3시간을 버티는 내화(耐火)도료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9·11 테러 때, 빌딩의 철 구조물이 열기에 녹아 건물이 붕괴되자 국내에서도 내화도료가 법제화됐고 삼화가 재빨리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점차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지만 기술·영업 면에서 '잘 준비된 회사'엔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