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미래를 묻다] 번역서는 5%뿐… 신뢰 금 가는 사재기, 왜 하죠?

일본 도쿄 서북부 '나라를 지키는 사찰'이란 뜻의 고코쿠지(護國寺) 인근에 일본을 대표하는 초대형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있다. 1909년 창업해 올해로 105년째 책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202억엔(약 1조2000억원). 노마 요시노부(野間省伸·45) 대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어 2011년부터 고단샤 7대 사장으로 있다. 고단샤 본사 신관 9층 응접실에서 지난 16일 인터뷰했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가 있다. 출판 철학이 있다면.

"증조 할아버지인 창업자(노마 세이지·野間淸治)는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책'을 출판 철학으로 내세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잡지나 만화 등으로 출판 중심이 달라졌지만, 지향하는 철학이 바뀌지는 않았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과 출판사가 내고 싶은 책이 다를 수 있다.

"독자의 니즈(필요)에 대응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독자의 니즈가 전부라는 말은 아니다. 현장 편집자들이 구상한 책이 독자의 요구와 차이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역시 독자가 중심이다."

―한국에선 TV 드라마에 언급되거나 영화 원작이 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도) 소설·만화 등이 드라마나 영화 원작이 되면 판매가 다시 살아난다. 10년 전부터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형태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다."

―종이책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데.

"최근 10년 사이 종이책이 하향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돈과 시간을 더 쓰고 있다. 출판만이 아니라 TV·라디오 등 다른 매체도 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인터넷·모바일 쪽으로 독자들의 선호가 치우친다면 출판사도 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전자책 비율은 어떻게 되나.

"아직 10%에 못 미친다. 그러나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본다. 전자책 비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종이책 비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판 시장 전체로 보면 종이책 비율이 줄었지만, 고단샤는 지난해 종이책과 전자책이 함께 상승했다."

―만화 '진격의 거인'이 매출에 큰 기여를 했다고 들었다.

"'진격의 거인'이 큰 역할을 했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 소설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 같은 베스트셀러가 몇 종 있었다. 지난해 매출과 수익이 모두 19년 만에 올랐다. 매출액 중 만화 비율이 50%를 차지한다. 1990년대 이후 만화 비중이 커졌다. 잡지는 30%, 일반 서적이 20%다. 외국에서는 '만화 전문 출판사인가'라고 묻는데, 고단샤는 단행본 서적 출판으로 일본 최대 출판사다."

―국내서와 번역서 비율은 어떻게 되나.

"95%가 국내 저자다. '스티브 잡스' 같은 책처럼 번역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서는 하향세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번역서가 많이 팔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 관련 책은 여전히 번역서가 많다."

―국내서가 강세인 이유는.

"글쎄, 뭘까? 미국에서는 존 그리샴이나 스티븐 킹 같은 작가의 작품이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는데, 일본 독자들은 이제 식상해진 듯하다. 미국엔 '만화'가 없기 때문 아닐까(웃음)."

―국내 저자 발굴이 중요하겠다.

"만화·문학을 비롯해 여러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해당 잡지에서 신인상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신인 작가를 발굴한다."

―한국 출판계에는 '사재기'가 문제 되고 있다.

"일본에서 그런 일을 하면 리스크(위험)가 너무 크다. 법률 문제가 아니라 출판사의 '레퓨테이션(명성)' 문제다."

노마 대표는 처음엔 '사재기'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대량으로 자기 책을 사는 행위'라고 설명했는데, 당초 대답은 "책을 대량 서점 매대에 두고 프로모션 하는 경우가 있다. 성공하면 서점에 성공 보수를 지급한다. 하지만 대량 반품돼 돌아오는 리스크가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는 할인 판매를 제한하는 법률이 최근 개정됐다.

"정가 이하로 파는 일은 법률로 금지돼 있다. 구매 가격의 1% 정도를 적립하는 포인트카드 제도는 있다. 전자책은 10권 시리즈 중 한 권을 무료로 준다."

―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매체가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르는 시대다. 리스크를 해결하는 범위 내에서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종이책이 없어지고 모두 전자책이 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용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것이다."


☞고단샤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쇼가쿠칸(小學館) 등과 더불어 일본 최대 규모 출판사다. 지난해 일반 잡지 363종, 만화 잡지 385종, 만화 단행본 1691종, 일반 단행본 1724종을 출간했다. 총 발행 부수 3억7586만부로 일본 전체 출판 시장의 15%를 차지했다. 최근 18년간 계속 적자를 기록하며 주춤했다. 하지만 지난해 만화 ‘진격의 거인’이 3000만부 이상 팔리는 ‘대히트’로 19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며 옛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햐쿠타 나오키) ‘기도의 막(幕)이 내릴 때’(히가시노 게이고) 등도 밀리언셀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