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위험한 투자' 부추기는 특정금전신탁 다시 급증

70조원에서 80조원이 되는 데는 8개월 걸렸다. 80조원에서 90조원이 되는 데는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후 3개월 만에 100조원을 돌파했고, 다시 두 달이 지나자 10조원이 더 늘었다.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준 이것은 '특정금전신탁'이다. 지난해엔 동양그룹 위기의 영향으로 증가 속도가 주춤했지만, 올 들어 다시 속도가 붙기 시작해 3개월 동안에만 11조원 유입됐다. 특정금전신탁은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358조원)의 3분의 1이나 되는 규모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특정금전신탁의 위험이 한국 경제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허점 많은 특정금전신탁 다시 증가

특정금전신탁은 투자자가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면서 어디에 투자해 달라고 직접 정하는 맞춤형 실적 배당 상품이다. 예금이나 펀드와 달리 금융회사는 소비자 보호 규제를 피할 수 있고, 투자 책임도 투자자에게 있다.

특히 지금 방식대로는 특정금전신탁의 운용 대상을 '채권' '주식' 등으로 뭉뚱그려 지정할 수 있어, 증권사가 위험한 상품을 어렵지 않게 판매할 수 있다. 물론 그 책임은 증권사가 아닌 투자자에게 있다.

지난해 9월 동양 사태 때, 동양증권은 동양그룹 계열사의 투자 부적격 등급 CP를 사들여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개인에게 판매했다. 이후 증권사의 특정금전신탁 판매는 잠시 잠잠해졌지만, 규제가 시행되지 않는 점을 틈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동양과 같은 사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증권사가 판매한 특정금전신탁은 54%가 채권형이다. 채권형 금전신탁은 대부분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에 투자하므로 투자자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런 상품에 유입됐다는 뜻이다. 펀드도 CP나 회사채를 담지만,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한 상품으로 관리하고 운용 책임은 펀드 매니저가 진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신중하게 투자하도록 고객이 어떤 채권과 주식을 편입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약하게 하는 대책을 내놓고 2분기 중으로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가 오래걸려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정기예금 ABCP, 뇌관 될까

특정금전신탁 중 주목해야 할 대상은 '정기예금'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기예금을 기초로 증권사가 판매한 특정금전신탁은 지난 3월 말 현재 총 25조원으로, 전체의 20% 수준이다. 특히 작년부터 자산가들 사이에서 중국계 은행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이용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이 인기를 끌면서 급증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궁상(工商)은행·중궈(中國)은행 등 대형 중국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채권을 기초로 ABCP를 만들어 팔고 있다. 올 들어서는 전단채·파생결합증권(DLS) 형태로도 발행하고 있다. 국내 은행의 예금보다 금리가 0.5~1.0%포인트 높다. 상품 판매가 급증하자 위안화 예금이 크게 늘었다. 2012년 말 1억7000만달러에 불과하던 국내 위안화 예금은 지난달 말 113억3000만달러(약 11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는 중국계 은행이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상황이 변수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일단 금융감독원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조성래 외환감독국장은 "예금 자산 운용이 중국으로 과도하게 쏠렸다는 지적에 현황을 파악했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면서 "중국계 은행은 국제 신용등급이 국내 은행보다 높고,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4조달러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려하는 쪽에서는 금리 인상 상황을 가정한다. 증권사는 자기자본으로 만기가 1년 이상인 중국계 은행의 예금이나 채권에 가입하고, 이를 기초로 ABCP를 발행해 3개월 단위로 쪼개 파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시중 금리가 오르면 고객들이 계속 투자하지 않고 만기에 돈을 찾아가 증권사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상품은 중국계 은행의 신용만큼 원리금을 실제로 지급할 증권사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윤영환 서울신용평가 상무는 "CP 시장에 비정상적 물량이 많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정상적 CP도 거래가 안 되고, 우량 기업의 현금 흐름이 망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금전신탁

금융회사·투자자 일대일 거래… 투자자가 자산운용 직접 참여

특정금전신탁은 고객이 증권사나 은행을 찾아가 자금 운용 방법을 '특정'해 금융회사에 맡기는 상품이다.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일대일로 만나 맞춤형으로 자산을 관리하며, 투자자가 직접 자산 운용에 참여할 수 있다.

수시입출금식신탁(MMT)은 단기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특정금전신탁의 하나이며, 자금 운용 방식이나 투자 대상을 투자자와 협의해 운용한다.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환매조건부채권(RP), 은행 간 자금 거래에 쓰이는 콜론 등에 투자한다.

기업어음(CP)은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 단기 어음이다. 보통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 자금을 마련할 때 발행한다. 회사채보다 만기가 짧고, 발행 절차가 간편하고 비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은 CP의 일종이지만, 대출 채권이나 매출 채권, 회사채와 같은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다. 우리나라에서 ABCP는 부동산 투자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많이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