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그림 50점 골라 반세기 추억합니다"

"한 푼 대가 없이 보내주신 그림들입니다. 꿈과 열정의 문학예술 시대였어요."

문예지 '전북문학'이 이달로 지령(誌齡) 267호를 채우며 창간 45주년을 맞았다. 전북대 명예교수인 최승범(83) 시인이 편집을 맡아 동호인들로부터 회비를 거둬 비영리로 발간해온 최고 지령의 동인지(同人誌)다. 전북대 박물관은 이를 기념해 전북문학 표지 그림을 모아 오는 8일부터 한 달간 전시회 '全北文學, 시와 그림을 담다'를 연다.

전북문학이 창간된 것은 가람 이병기(1891~1968) 1주기인 1969년 7월이다. 가람 후배인 신석정(1907~1974)과 김해강(1903~1987), 제자인 최 시인 등 전주 문인 25명이 호주머니를 털었다.

전북대 문리대학장을 지낸 가람으로부터 문학을 배워 이 대학 국문과 강단을 이어받은 최 시인은 신석정의 맏사위이기도 하다. 신석정은 전북문학 표지 제호도 써주었다.

오래된 국내 문예동인지로는 1946년 대구에서 창간된 '죽순'과 1967년 광주에서 낸 '원탁문학'이 있다. 죽순은 6.25로 중단됐다가 1979년 복간했고, 원탁문학은 1970년 '원탁시'로 제호를 바꿨다. 죽순은 47호, 원탁시는 59호까지 간행했다. 둘 다 발행기간 혹은 지령에서 '전북문학'에는 미치지 못한다.

계간에서 격월간, 다시 계간으로 바뀐 전북문학엔 매호 40여편의 시와 산문이 실렸다. 원고가 쏟아져 1년에 10권을 낸 적도 있다. 등단문이 워낙 좁아 문예지에 작품을 싣는 것 자체가 쉽지 않던 시절이다. 김동리·김남조·김후란·유안진·조병화·허영자·황금찬 등 서울의 문인과 재미 문인, 일본의 작가들까지 작품을 보내왔다. 최 시인은 "그 시절 문학은 꿈과 자존심이자, 가난한 현실 너머 피안(彼岸)의 땅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북문학은 42호부터 표지에 그림을 실었다. 장욱진·이복춘·이상찬·박광식·이억영·김태신·이상숙 등 서울 화가들이 산수와 꽃, 추상화 등으로 채워주었다. 그들은 대가 없이 그림을 주며 전주의 문학 활동을 격려했다. 전북문학은 고료를 주지 않는다. 거꾸로 게재료를 받아 그 돈으로 100~300쪽씩 간행해왔다.

최 시인은 매호의 표지 그림을 시로 구성해 전북문학에 실으면서 화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의 제자인 이태영 전북대 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그 그림들 가운데 50여점을 골라 시와 나란히 선보이며 전북문학 반세기를 추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1996년 교수 정년퇴임 후 팔순에 들어설 때까지 매주 두 차례 무료 시민문학강좌를 열었다. 요즘도 매일 전주 한옥마을 옆, 그의 호를 딴 '고하문학관'으로 출근해 집필하며 평생 모은 국문학 서적 4만여권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