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소망, 마침내 이루네요"

1970년대 초, 20대 청년 윤호진(66)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독일 브뤼케 극단의 연극 '보이체크(Woyzeck)'를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내의 부정(不貞)을 알게 된 주인공의 두 눈 중 한쪽 눈만 돌연 이중섭 그림의 황소 눈처럼 커졌다. '분노가 저렇게 표출되는 것이구나…. 이게 바로 연극이고 연기구나!' 그는 훗날 연출가가 된다면 반드시 이 작품을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40년이 지나 그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지게 됐다.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보이첵'이 오는 10월 9일부터 11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라간다. '보이체크'가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것은 세계 최초다. '명성황후' '영웅' 등의 굵직한 작품을 제작·연출해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부(代父)'라는 말을 듣는 윤호진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은 "예술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뮤지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10년 전부터 했습니다. 제가 원래 한번 뭘 시작하면 5년쯤 걸리는데, 이건 좀 더 걸렸네요." 그는 2003년 '명성황후'의 북미 공연을 한 뒤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로는 해외시장 진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영어 뮤지컬을 제작해야 할 텐데….' 그때였다. 드라마센터의 '보이체크'가 떠오른 것은.

'보이체크'는 1836년에 쓰여진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비극으로, 무대 공연 역사상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이다.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가 생체실험을 당하는 등 사회 구조의 모순 속에서 괴로워하다 파국을 맞는다는, 무척 어두운 색채의 작품이다. 이걸 뮤지컬로 만든다니?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밝고 코믹한 내용만 뮤지컬이 되는 것은 아니죠."

2007년 영국 그리니치 극장을 통해 공모에 나선 결과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스'가 극본과 작곡을 담당하게 됐다.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부글부글 끓는 진정성이 있더라고요. 보이체크 정서하고 딱 맞겠다 싶었죠." 그 뒤로 다시 7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작품을 수정했다. 김다현·김수용·김소향 등이 출연하는 이번 공연만 한국어로 진행하고, 이후엔 영어 버전으로 웨스트엔드와 독일 등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마지막 장면에선 씻김굿을 연상케 하는 우리 정서도 넣었습니다. 뮤지컬도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