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대기업 채무보증액 40% 증가… '숨은 빚' 주의보

KT그룹 계열사 KT ENS는 지난 3월 갑작스럽게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KT ENS는 루마니아에서 진행하던 태양광 사업과 관련, 1000억원대 어음 지급보증을 하고 있었는데 이 어음이 부도 처리된 것이 화근이었다. 태양광 사업이 부진에 빠지자 보증은 거대한 빚이 되어 돌아왔다.

국내 대기업들의 숨은 빚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빚으로 전환될 수 있는 채무보증이 작년 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채무보증이란 제3자가 대신 빚을 갚아 주기로 한 약속인데, 주로 건설 시행사나 자회사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증권 전문가들은 보증 대상자가 빚을 못 갚게 될 경우, 채무보증을 제공한 회사에 부실이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63개 대기업집단 채무보증 규모 129조

조선비즈가 증권 정보 업체 와이즈에프엔에 의뢰해 대기업집단 63곳(공정거래위원회 지정)의 채무보증 규모를 파악해 본 결과, 작년 말 기준 채무보증 총액은 총 129조359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2년에 비해 약 4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2011년 103조원에서 2012년 95조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작년에 크게 증가했다.

기업집단별 증가율을 살펴보면 농협·한솔·삼성·OCI그룹 순이었다. 현대·아모레퍼시픽그룹도 2012년에 비해 채무보증액이 80~146%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개별 기업별로는 삼성물산·삼성SDI·한솔제지·삼성전자·NH농협증권·롯데칠성·CJ대한통운·OCI의 증가율이 비교적 높았다.

대기업집단의 채무보증 금액이 늘어난 것은 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해외 자회사 지급보증액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수익 전망이 좋은 프로젝트(사업)를 바탕으로 장기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건설업체가 영세한 시행사에 지급보증을 제공해 자금을 끌어오는 사례가 많은데, 이 PF 지급보증 규모가 2012년에 비해 79% 늘었다. 해외 자회사를 대상으로 한 지급보증 규모도 전년에 비해 74% 증가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대기업집단의 해외 자회사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는 39조6800억원으로, 전체 채무보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및 국내 계열사 등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도 44.3% 늘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 해외 사업 부진 시 동반 부실 우려

일반적으로 채무보증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채무보증 대상 업체가 상환 불능에 빠지지 않는 이상 부채가 발생하지 않고, 상환 불능이 되더라도 채무보증 제공 업체의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면 이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해외 사업이 망가지거나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된다면 지급보증을 제공한 회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증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PF 사업은 건설 경기 불황으로 사업장의 착공이 늦춰지면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LIG투자증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주요 건설사들의 PF 미착공 규모는 4조2000억원에 이른다. OCI·한화그룹은 해외 태양광 사업 관련 지급보증이 많은데, 태양광 업황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해당 업체들은 채무보증액 증가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금융업 특징상 지급보증 형태의 대출이 많을 수 있다"며 "농협의 지급보증의 경우 PF나 해외 자회사와 관계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해외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반적 현상으로 재무 구조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