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잊고 살던 우리 그림, 이렇게 만나 행복했소

지난 4월 개막해 석 달 동안 해운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전 부산전이 지난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시가 끝나면 당분간 한자리에서 모이기 힘든 교과서 명화를 보기 위해 지난 주말에만 1만명이 몰렸다. 부산전 관람객은 총 12만7000명. 국내 작가들만의 작품으로 지방에서 한 전람회 가운데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 수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서울전의 관람객 수(40만명)를 합치면 총 52만7000명이 우리 명화를 보러 전시장을 찾았다. 국내 작가들의 전시로는 이 역시 신기록이다.

◇미술 편식, 문화 갈증 해소

국립현대미술관과 조선일보사가 함께 주최한 이번 전시엔 박수근·이중섭·천경자 등 1920~70년대를 풍미한 한국 작가 57명의 유화 70점, 수묵채색화 30점 등 모두 100점이 전시됐다. 미술계에선 이번 전시를 단순히 관람객이 많이 온 '블록버스터 인기 전시'가 아닌 '문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그간 서양 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있던 한국 미술을 재조명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주요 컬렉터들과 함께 VIP 투어를 7번 했다는 문화예술 컨설팅 그룹 '에이트인스티튜트' 박혜경 대표는 "그사이 해외 유명 화가 전시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만 혈안이었지 우리 미술을 스스로 보려는 노력은 많지 않았다. 우리 근현대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터뜨려주는 기폭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국민 작가로 불리는 몇몇 작가의 유화 작품 말고도 변관식, 이상범 등 대중에게 덜 알려졌던 동양 화가들의 작품도 재조명됐다"고 평했다. 작가 이인성의 아들 이채원(64)씨는 "아버지의 그림을 많은 이가 감상할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며 "특히 중년 관객이 많이 몰리는 걸 보면 '우리 것을 모아놓고 보니 주옥같은 시절이 있었구나'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지방으로까지 확산됐다는 점은 더 고무적이란 평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옥영성씨는 "중요 전시가 서울 중심으로 이뤄져 불균형이 심했는데 한강 이남에서도 이런 전시를 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가능해졌다는 걸 확인해준 기회"라고 했다.

◇'문화 공유'를 보여주다

전시의 숨은 공로자는 개인 소장자들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미술관 등 사설 미술관이다. 전시 작품 중 35점이 개인 소장품이었다. 이들은 '좋은 예술을 나누자'는 취지에 공감해 고이 모셔뒀던 소장품을 내놨다. 이중섭(1916~1956)의 대표작 소 그림 3점을 1972년 이후 42년 만에 서울전에서 동시에 관람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서울전 개막 때부터 걸렸던 개인 소장 '황소'(1953년경), 서울미술관 소장 '황소'(1953년경)와 함께 홍익대박물관이 소장한 '흰 소'(1955년경)가 지난 2월 합류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개인 소장자 등 관과 민이 힘을 합해 만든 전시였다"고 했다.

◇근대 미술관으로 흐름 이어가야

우리 미술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문화계 내부에선 이참에 우리 근대 미술을 한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근대 미술관을 짓자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평론가 정준모씨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윤범모 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이구열·최열씨 등과 함께 가칭 '근대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籌備)위원회를 조직 중이다. 이달 중 블로그를 만드는 등 '한국의 오르세 미술관을 짓자'는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박혜경 대표는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려면 일단 한국 미술을 감상할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기획전을 해외 주요 도시에서 순회전으로 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최명영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는 "훌륭한 명화임에도 100선 안에 못 들어간 작품도 많다. 숨겨진 명화를 더 발굴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이런 전시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