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사 실적 좌우하는 건 주식 아닌 '채권'

기준금리가 동결됐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일부' 채권 투자자는 아쉬움을 곱씹게 됐다.

올 들어 지난달 초까지 연 2.8~2.9% 수준이었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지명된 13일 이후 계속 떨어져 지난 2일 한때 2.5 8%까지 하락한 터였다. 이와 관련해 증권가에서는 "일부 투자자가 한은의 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채권을 매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문에는 '투자자'의 정체는 증권사일 것이라는 추측 역시 붙어다녔다. 증권사들은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실제로 채권시장에서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 이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소문이 맞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증권사들이 강력하게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증권사들의 채권 보유 물량이 140조원이 넘는데,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것은 이 채권 가격이 올라간다는 얘기고 이는 곧 증권사의 실적 호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증권사는 거대한 채권 덩어리"라고 지적한다.

◇채권 가격에 휘둘리는 증권사 실적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1분기 말을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채권(국고채, 회사채, 특수채 모두 포함)이 141조3000억원에 달한다.

채권 가격에 따라 증권사 실적은 휘둘리기 일쑤다. 증권사의 주 수익원은 주식 매매 수수료(브로커리지 수수료)라고 하는데, 아무리 주식 매매로 수익을 내도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헛일이다. 1분기 증권사들은 당기순이익을 총 3551억원 냈는데, 채권 관련 수익이 1조2615억원이었다. 주식으로 인한 손익은 1698억원 적자였다. 주식 관련 손익은 지난해 4분기보다 적자 폭이 커졌는데(손실이 860억원 증가), 단순히 채권 수익으로 '파티'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자본 확충·회사채 총액 인수·ELS 인기에 대폭 늘어난 채권 보유량

그렇다면 증권사들은 왜 이렇게 많은 채권을 들고 있는 것일까?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일단 2011~2012년 우리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삼성증권·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늘렸다. 하지만 당장은 딱히 자기자본을 굴릴 곳이 없었고, 결국 채권을 편입했다.

최근 몇 년간 회사채 발행 시장이 A등급 이상 우량기업 위주로만 돌아가는 것도 원인이 됐다. 발행 기업들은 낮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고, 만약 미달이 날 경우 발행사가 잔액을 전부 인수하는 총액 인수 계약을 맺으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외면했지만 발행 기업은 아무 차질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남은 물량은 모두 증권사가 가져갔다.

주가연계증권(ELS) 열풍도 원인이다. ELS는 처음 발행할 때 투자 자금의 90% 안팎을 우량 채권에 투자한다. 그리고 소액을 기초자산과 연관된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구조다. 매년 수십조원 단위의 ELS가 발행되다 보니 증권사의 보유 채권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올해 일부 증권사는 보유 중이던 채권을 개인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줄이려고 했으나, 계속되는 ELS 투자 열기에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증권주 투자한 개인들도 기준금리 잘 살펴야"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이 채권 물량을 줄이고 새로운 상품을 많이 개발해 ELS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증시 전문가는 "지난해 증권사들은 1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채권에서 1조4000억원 적자가 난 것이 원인이었다"며 "'채권 손익은 일회성 요인이니 기업 가치를 계산할 때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하기엔 채권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고 지적했다. 개인 투자자들 역시 기준금리 인하나 채권시장과 관련한 이슈를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증권사 실적이 채권 가격에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준금리를 정하는 당국(한국은행)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결정을 내려주면 채권으로 인한 증권사들의 어닝 쇼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