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손자와 블루베리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뒤, 일요일이라고 다니러 온 손자와 아파트 옥상 텃밭으로 올라갔다. 몇 달 전만 해도 옥상 텃밭에 관심이 없었다. 옥상에 올라가면 그저 이리저리 뛰느라 바쁘기만 했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서 토마토가 열리고, 오이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올 때마다 자라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이젠 오기만 하면 꼬마 토마토 보러 가자고 먼저 나선다.

“할머니, 딸기는 다 어디 갔어요?”

텅 빈 딸기상자 텃밭에 묘목으로 세 포기만 달랑 있는 것이 영 수상쩍었나 보다.

“으응, 딸기는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야 또 열려.”

“할머니, 블루베리가 한 개 떨어져 있어요."

내 얘기에 모를 말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대던 손자가, 블루베리에 급히 관심을 보인다. 냉큼 익어 떨어진 블루베리를 집어 입에 넣는다.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행복한 얼굴로 눈까지 감으며 “아~~, 맛있다.”라는 소리까지 보탠다. 예기치 않은 내 행동에 어이가 없는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먹고 싶니?”

“네”

“그럼 여기에 따렴. 까만 것이 다 익은 거야, 보라색이나 푸른색은 안 익어서 맛이 없을걸.”

작은 바가지를 건네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땡볕에 서서 블루베리를 따서 담는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따서 바가지에 담는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보라색 한 알을 따서 냉큼 입에 넣는다. 시큼털털한 맛에 저절로 얼굴을 찡그린다. 실제로 보라색 블루베리 맛이 궁금했나 보다.
 
익은 블루베리를 다 따더니 블루베리가 담긴 바가지를 간이 탁자에 올려놓는다.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블루베리가 담긴 바가지를 두 손으로 잡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손자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블루베리를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다. 얼른 하나를 집어 내 입에 넣는다.

힐끗 쳐다보던 손자가 저도 얼른 한 알을 집어 그 작은 입에 슬며시 집어넣는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달콤한 블루베리 맛에 망설이던 마음이 한순간에 날아간 모양이다. 먹고 또 먹고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잘도 먹는다. 내가 그냥 구경만 하고 섰으니 나보고도 같이 먹자고 한다.

나 한 알 먹고 손자가 한 알 먹고…. 어느덧 바가지엔 블루베리 한 알이 남았다. 손자가 먹으라고 가만히 서 있으니 손자가 한 알을 내게 내민다. “할머니 드세요.” 한다. 너 먹으라고 하려다가 어른 공경하는 것도 가르치자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

손자 녀석이 그 앙증맞은 손으로 마지막 한 알을 집어 내 입에 넣어 준다. 달콤한 향내가 배가 되어 입안 가득 퍼진다. 이보다 더 맛있는 블루베리가 있을까 싶다. 내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자리 잡는다. 손자의 가슴속에도 할머니와의 추억 하나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